예료맥(乂了脈)을 떠나며

굴지의 상인이자 재무의 귀재, 건국의 공신이었던 진 뤠이신은 듀리온 왕국에 남아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는 타이샨으로 귀향하는 길을 택했다.1)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면 그렇게 한 그의 동기이다. 물론 타향에 오래 있다 보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나, 이유는 과연 그뿐이었을까? 돈울프의 개인 서류 중에 발견된 다음 편지는 타이샨에서 온 '황금손의 사나이'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돈울프 공에게,

이 편지를 받고 기뻐하지 않을 것은 잘 아오. 아직 할일이 너무나 많다고, 왕국에는 아직 진 뤠이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귀에 선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떠나는 것은 결국 내가 어쩔 수 없는 장사꾼이라 그런 것이오. 공의 설득대로 이 건국의 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일을 했고 많은 득을 보았으나, 뜻을 이룬 지금 앞길에는 얻을 득이 없고 화만 보이니 현명한 장사꾼이라면 떠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수없는 전쟁과 난을 지켜본 나이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흐를 것과 같은 피에는 발을 담글 수 없소이다.

생각 같아서는 함께 떠나자고 청하고 싶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압니다.2) 그래도 혹시나 하여 준비는 해놓으니, 언제든지 급히 몸을 피하고자 한다면 포목점 거리에서 '산샨 포목' 주인 리이를 찾아주십시오. 공의 얼굴만 보면 리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알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칼라인 폐하를 섬기게 된 것도 돈울프 공의 설득이었지요.3) 그 덕에 이 뤠이신은 큰 이익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큰 장사 즉, 나라를 세우는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보답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공께 조심하라고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 땅을 조심하십시오. 갑자기 많은 변화와 죽음을 겪은 이 땅과 그 백성은 언제, 누구를 원망하며 미워할지 모릅니다. 다스릴 때는 강하게, 다독일 때는 자애롭게 하지 않으면 다시 혼란기가 찾아올지 모릅니다.

둘째, 왕이라는 존재를 조심하십시오. 왕이란 무릇 한 나라의 주인, 은공을 쉽게 잊으며 권세를 나누기 기꺼워하지 않습니다. 왕보다 위에 서려는 것은 왕의 진노를 사는 일이며, 왕의 분노는 깊고 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셋째, 교회를 조심하십시오. 머리를 잃은 짐승은 헤메이게 마련이니, 우리의 또 다른 벗이 떠나간 이후 교회는 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 혼란 중에 어떤 신도 기꺼워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전쟁이 없어도 피는 얼마든지 흐를 수 있는 법입니다.

넷째, 귀족들을 조심하십시오. 가졌던 것을 빼앗기기는 누구나 싫어하니,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바꾸려고 하면 분노도 그만큼 커질 것입니다. 돌에 구멍을 내는 것은 폭풍이 아니라 한 방울씩 꾸준히, 부단히 떨어지는 물임을 기억하십시오.

다섯째, 다른 무엇보다 돈울프공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공의 뜻을 내가 알거나 짐작하니, 그 원대한 의기를 펼치기에 이 세상인들 충분하겠습니까. 그 가슴 속에 불길이 있어 이랑의 끝에 닿을 때까지는 쟁기를 놓지 못할지니 그 이랑의 끝이 어디인지는 보이는지, 끝이 있을지 염려할 따름입니다. 저 먼 별을 바라보는 눈이 가는 길의 구덩이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이상을 향해 달리는 발이 진창에 빠지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가시는 길에 더는 돕지 못하고 우리 고향에서는 예러모4)라고 하는 이 땅을 떠나며 한편 홀가분하면서도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생전에 이 땅과의 인연은 마지막이겠지요. 구천(九泉)5)너머에서라도 다시 뵐 수 있기를, 그때 술잔을 주고받으며 지나간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충한 친우 진 뤠이신 드림.

이 편지에서 엿볼 수 있듯 통일과 독립 후 왕국에는 많은 혼란의 소지와 산재한 문제들이 있었으며, 진 뤠이신은 그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전쟁보다 어쩌면 더욱 참혹한, 성공의 결실을 두고 벌어질 내분과 혼란을… 그 징조를 미리 알아보고 몸을 피한 것은 그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주며,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그의 사람됨을 잘 보여준다. 돈울프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까지 예견하고 있던 그가 동료이자 친구를, 그리고 많은 세월을 바친 타향을 떠나가면서 그 소회가 어떠했을 것인가. 누구보다 먼저 시류를 읽고 몸을 피해 건국의 수많은 공신들에게 닥친 화를 피했으되, 친구는 구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그가 떠난 후 그의 예견대로 듀리온 왕국은 다시 혼란의 긴 열병을 겪어야 했다.

4) 乂了脈, 어진 깨달음의 정기
5) 타이샨의 사후세계

댓글

_엔, %2007/%11/%04 %17:%Nov:

또 올리셨군요! 뱀프님과 두 분이서 굉장하세요.; 연표에 넣고 싶었던 것은 마그누스나 세렌 이전인지 아닌지 몰라서 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통일 뒤의 혼란이라는 것은 전쟁의 마무리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새로운 혼란이 어떤 이유로든(ex)공신 대숙청) 생겨났다는 것인가요?

어쨌든… ~가지 이유를 들어 말하기는 중국의 현자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뤠이신은 냉정한 상인이면서 동시에 현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매력적이고요. 개국공신 3총사 중에서 적어도 돈울프와 뤠이신은 개인적인 호감을 서로 갖고 있었다는 점도 기쁩니다.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인간들이었단 뜻이겠지요. 제목도 시적이고 뤠이신의 마지막 문장이 좋아요. 구천 너머에서 두 분이 술잔을 주고받고 계시길 바라는 이 마음…

전 사실 진 뤠이신의 승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편이 훨씬 정상적;이고 해서 그냥 준비하던 글 접을까 합니다.

 
로키, %2007/%11/%05 %02:%Nov:

시기상으로는 세렌 숙청 이후, 마그누스 암살보다는 훨씬 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각 난하고의 관계는 좀 애매해서 일부러 모호하게 처리했고요.

구조상으로는 의도적으로 극적인 만남에서 돈울프가 뤠이신을 설득하는 대화를 따라갔습니다. 잘 보면 내역마저도 겹치는 데가 있죠. 진 뤠이신하고 돈울프는 서로 존경하고 아끼는 친구 사이로 자연스럽게 써지기도 하고요. 서로 닮았으면서도 보완하는 사람들이라 그렇겠죠.

승천도 재밌겠는데요? ㅋㅋ 확 반박해버리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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