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 : 왕의 그림자

자유로운 운명을 누리시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해방자, 데오스의 축복이 있기를!

건국왕이 '시작의 도시' 제이피리스에서 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 때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우리가 익히 듣고 있는 '조언자 마그누스' 이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단 한 사람, 통일전쟁 직전 제국으로 도망친 “불충한 브로밀”에 대해서는 모든 기록이 삭제되고, 그 이름은 배반과 저주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왜 도대체 브로밀은 자신이 누리던 편안한 자리를 순식간에 던져버리고, 배반자라는 악명을 선택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제국으로 도망친 후의 행적을 우선 살펴보아야 합니다.

왕실사록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브로밀은 제국으로 도망친 후, 왕을 모독하는 내용이 담긴 '왕의 그림자'라는 서적을 발간했다.

당시 왕을 적대한 세력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이 서적은 이후 금서로 지정되어 모든 서적이 불살라졌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본은 기적적으로 교회의 깊숙한 장서 안에 숨겨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책은 제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1)

예상과는 달리 이 책에는 건국왕에 대한 직접적인 모독은 거의 들어있지 않았으며, 다만 왕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조언자였던 마그누스가 어떻게 건국왕을 추대하고 어떻게 그 길을 닦았는지에 대하여 보로민이 지켜본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내용들 하나하나는 왕의 권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제이피리스에서 건국왕이 왕으로 추대되는 과정이었습니다.

회의를 통해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영주는 미치광이가 되어 폭정을 저질렀다.2) 그리고 그로 인하여 칼라인 듀리온이라는 자에게 심판을 받은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치기 전의 영주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명군이었고, 모든 백성들이 영주님의 아드님이신 엘민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그를 왕으로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제국에 반역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었다.

마그누스라는 자의 협박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브로밀은 전 영주를 모시고 있던 충성스러운 기사 중 한 사람이었고, 엘민은 전 영주의 아들로서 그 당시 제이피리스 백성들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던 총명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전 영주의 신하들은 엘민을 데리고 당시 무명의 검사인 '칼라인 듀리온'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던 마그누스에게 갔습니다.

마그누스는 마치 상전이라도 된 것처럼 거만한 자세로 우리를 맞았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칼라인 듀리온을 왕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엘레할의 신탁이 내려졌습니다. 이 곳은 칼라인 듀리온께서 왕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딜 장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하는 이 곳의 주인은 이 분, 엘민 님이시오.”

그 때, 엘민이 마그누스의 얼굴을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 사람이에요! 그때 아버님이 광기에 빠지시던 날, 아버지를 방문했던 이방인이 바로-“
“조용히.”

마법사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바뀌었다. 엘민은 마치 얼어붙은 듯,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당신들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으니, 일주일 후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그날 밤부터 엘민은 광소를 터뜨리고 주위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이상한 소리만을 중얼거렸다. 그러다 어떨 때에는 “붉은 옷의 남자가 온다…. 아버지…. 안돼!” 라고 외치며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삼 일후, 엘민은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엘민의 죽음은 병사로 처리되었다. 장례식장에는 나와 몇 명 밖에 가지 않았다.
일 주일 후의 재회담에서 우리는 만장일치로 칼라인 듀리온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후,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정들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건국왕은 교회의 손을 들어주었고, 세계는 요정의 마법에서 벗어났습니다.
만일 칼라인 듀리온이 아닌 다른 이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공포와 압제의 나날에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본다면, 결과만으로는 마그누스에게 감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요정의 방식은 잔혹하고 무자비합니다. '왕의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3) 왕의 그림자 속에서 무고한 사람을 미치게 하고, '무대의 주인공'을 위해 거리낌없이 희생양들을 주인공의 발 밑에 던지는 자들이 바로 요정이고 마법사였습니다.

이 저주받을 무리를 내치시고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신 우리 주, 하늘의 왕 데오스를 찬양할지어다.

1) 이 자리를 빌어 먼저 제 비겁함에 대해 고백하겠습니다. 만일 제가 50년 전에 태어나 활동을 했다면 저는 감히 이 내용을 누설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며, 더 이상 이 책으로 인한 사회적인 파문 역시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운명과 왕을 참조

댓글

_엔, %2007/%10/%30 %16:%Oct:

처음에 읽었을땐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 기분이었지만 일단은 -저도 요정들에게 어두운 면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는 고로- 3류 악당이 아니게 된 것만으로 만족하렵니다 : )

 
오승한, %2007/%10/%30 %18:%Oct:

미치게 하는 것은 1~2류고, 벌레를 쓰는 것은 3류인가요…(불만! 불만!)

 
_엔, %2007/%10/%30 %21:%Oct:

어떻게 죽는게 더 나은지 생각해보시면 그 차이점을 알게 된다니까요 (…) 흑… 저도 어두운 면은 인정해요! 단지 3류 악당이 되는 것만은 싫어요 (엉엉)

 
_엔, %2007/%10/%30 %22:%Oct:

아, 그런데 엘민인가요, 엘렌인가요?

 
오승한, %2007/%10/%30 %23:%Oct:

앗, 중간에 엘민이 엘렌으로 되었군요; 엘민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정석한, %2007/%11/%05 %20:%Nov:

반박 경매 개시. 마그누스 권위도 1 + 자금 1 = 2점으로 반박합니다.

 
오승한, %2007/%11/%05 %20:%Nov:

권위도 3+자금 0 = 3점입니다. 마음대로 하셈(…)

 
오승한, %2007/%11/%05 %22:%Nov:

아, 참조기사로 인하여 권위도 1점 추가. 4점입니다.

 
_엔, %2007/%11/%06 %01:%Nov:

제가 반박기사 쪽에 2점 보태서 '마그누스를 위하여'가 4점.

 
정석한, %2007/%11/%06 %01:%Nov:

다시 2점 추가 입찰. 마그누스를 위하여가 6점입니다.

 
정석한, %2007/%11/%07 %20:%Nov:

저는 관대하니(?)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겠습니다. 굴욕일기나 이쁘게 한편 쓰세요. (먼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