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눈을 뜨다

시길 당파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1인의 표식 (The Sign of One) 당파 내의 파벌이었던 1인의 의지 (Will of the One)를 알지도 모른다. 이들은 상상력의 힘으로 차원문의 신 아오스카르를 부활시키려 했던 집단이다. 1인의 표식 당파의 역사를 다룬 윅 자하르추크의 저서 '1인의 꿈'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레이디의 분노를 사서 힘을 잃고 신전마저 파괴당한 채 아스트랄계에 떨어진 아오스카르를 상상의 힘으로 부활시키려는 '1인의 표식'의 계획은 실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신을 부활시킨다는 엄청난 발상을 넘어 시길의 주인인 레이디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다름없었으니… (중략) 이 파벌의 주요 인물로는 하이 룬 크란, 셰렐 라타사, 이나브니트 더 레드, 다부스 펠 등이 알려져 있다. (후략)

자하르추크가 1인의 의지의 주요 인물로 언급한 셰렐 라타사의 일기는 예전부터 공개 자료였으나, 기존 자료도 다시 종합해서 보면 전혀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기도 한다. 먼저 라타사의 일기 중 돌파 사건 약 3개월 전에 쓴 일기를 보자.

오늘 저녁, 언제나처럼 모여서 아오스카르의 부활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뭔가 변화를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동시에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이전에는 아오스카르의 부활을 상상할 뿐이었다면 오늘은 갑자기 어디에선가, 무엇인가 우리의 상념에 반응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원우주의 심연 어디에선가 거대한 힘이 뒤척이는… 우리들은 전율하며 서로 마주보았다. 저 아스트랄계 깊은 곳에서 아오스카르가 부활의 태동을 시작한 것을 지식보다 깊은 확신으로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가슴이 떨려서 오늘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다원우주의 중심인 나의 상념의 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개인의 힘인 것이다… (후략)

고(故) 라타사 여사가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이 갑작스러운 진척에는 혹시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일기 이틀 전 일자 시길 일보 3면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를 보도록 하자.

서기 구역 여관에 마인드 플레이어 일행 투숙

수정이슬 로(路)에 자리잡은 조그만 여관 '광대의 눈물'에 지난 2일 들어온 특이한 투숙객이 서기 구역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다름아닌 일리시드 일행이 이 작은 소란의 주인공. 투숙객 중 하나인 한 마인드 플레이어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구매 여행차 들렀을 뿐”이라며 “일이 끝나면 떠날 것이며,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근처 대연회장에서 늘 벌어지는 감각과 경험의 향연에 마인드 플레이어들이 식욕을 못 참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해가는 가운데 2층 창문 커텐에 비친 그림자에 촉수 여섯 개가 달린 머리의 윤곽을 보았다거나, 주변 거리에 기스제라이나 기스양키가 숨어있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담도 들려오고 있다. 물론 이들 이야기 중에는 기스제라이 남자와 기스양키 여자가 같이 거리를 정찰하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봐서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시민들의 문의에 한 하모니움 관계자는 “마인드 플레이어든 누구든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하모니움의 대응은 빠르고 강력할 것”이라며 질서를 지키고 하모니움의 지시를 따르면 불안해할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촉수 여섯 달린 마인드 플레이어,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기스제라이 남자와 기스양키 여자라는 믿지 못할 목격담… 극도로 드문 일리시드 변종인 울리사리드,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연구할 정도로 희귀한 사건인 기스제라이와 기스양키의 협력이 같은 곳에서 목격된 것이다. 우연이라거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희귀한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착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비상식적이다.

또한, '대연회장'과 '수정이슬 로'라는 말에서 뭔가 짚히는 게 있었던 필자는 옛 시길 지도에서 '광대의 눈물' 여관의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광대의 눈물 여관 위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광대의 눈물 여관은 (붉은 원으로 표시) 대연회장과 의회당을 잇는 수정이슬 도로변에 있으며, 연회장보다는 오히려 회당 쪽에 가까웠다. 알다시피 의회당은 1인의 표식 당파의 본부이며, 따라서 1인의 의지 모임도 대부분 이곳에서 열렸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촉수 여섯 달린 일리시드와 주변 거리를 정찰하던 인물 목격담에서 미루어 수끌리어라고 짐작되는 일리시드가 연회장 근처 여관에 투숙한지 이틀만에 1인의 의지 파벌은 아오스카르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에 뭔가 성과를 느꼈다. 일리시드는 강한 초능력을 나타내는 종족이며, 울리사리드는 그중에서도 특히 우월한 개체로 알려져 있다.1)

외차원계에서 신념은 곧 힘이다. 1인의 표식 당원은 상상력의 힘을 강하게 믿으며, 이런 그들의 믿음이 일리시드의 정신 능력으로 증폭된다면 그 위력이 얼마만할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비슷한 때에 신들의 무덤으로도 알려진 아스트랄계에서도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다른 기록을 봐도 알 수 있다. 다음은 플레인워커 도르프 틸렌의 아스트랄계 탐사기 중 라타사의 일기 일주일 후의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

은빛 공허2)에 도착한지 이틀, 이곳은 계속 뭔가 술렁이는 느낌이 든다. 은빛 아스트랄 물질이 쉴새없이 소용돌이치고, 전에 없이 많은 색깔 웅덩이3)와 아스트랄 통로4)가 생겼다 없어지고 있다. 기스양키 정찰이 전에 없이 많아져서 여러 번 숨어야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스트랄 퇴적물 수집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 곧 이곳을 떠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아오스카르는 어떤 성격의 신이었는가? 아타르 당파에서 편찬한 '죽은 신 명부'를 보면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아오스카르

차원문과 기회의 신으로 널리 숭배받았다. 시길에서도 그의 숭배가 널리 퍼져서 레이디 오브 페인마저 그의 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나, 레이디가 부리는 다부스 중 하나인 펠이 아오스카르의 사제가 되자 레이디는 즉시 아오스카르를 아스트랄계로 내치고 그의 신전을 파괴했다. (부서진 신전은 현재 아타르 당파의 본부이기도 하다.)

이들 자료를 모두 정리하면, 돌파 사건을 몇 달 앞두고 수끌리어는 아오스카르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집단 근처에 머무르며 그들의 상념을 정신 능력으로 증폭시켰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그러한 노력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차원문에 대한 아오스카르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시길의 차원문에 대한 레이디의 절대적인 제어에 대항할 수단은 바로 아오스카르의 능력이 아니었을까. 이렇듯 시길에 대한 전무후무한 파괴의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시길 시민의 눈앞에서.

2) 아스트랄계의 별칭
3) 아스트랄계에 생기는 차원문의 일종
4) 아스트랄을 지나 프라임 물질계와 외차원계를 직접 잇는 통로

댓글

오승한, %2007/%09/%16 %23:%Sep:

그렇기 때문에 시길에는 강력한 치안과 시민들의 애국심이 필요한 거였습니다!

 
로키, %2007/%09/%17 %00:%Sep:

레라 모드: “닥쳐 이 정부 선전원!” (..)

 
Forgotten, %2007/%09/%17 %12:%Sep:

카누메아스 모드: “공무원은 어디서나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