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쫓아라

흔히 시길을 가리켜 멀티버스의 중심이라고 한다. 그 말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길이 멀티버스 '통상'의 중심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비교적 반대 의견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원 간 교역의 대부분은 시길을 거쳐가며, 특히 모든 차원의 상인이 모여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곳은 시길이 유일하다.

경제는 곧 욕망이다. 멀티버스에 있는 무수한 존재의 욕구를 충족하는 매개는 통상과 용역이며, 그 욕구에는 살인과 파괴도 들어간다.1) 블러드 워가 경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만 봐도 이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라크마에 나온, 기스양키와 기스제라이를 전쟁 상태로 내몬 의심스러운 사건들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하는 실마리도 물건을 사고 판 기록을 통해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해 필자는 자료를 조사한 결과 샬리마 빈트 하미드의 훌륭한 저서 '전쟁을 팝니다 - 블러드 워의 경제적 배경' 전집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그중 제 5권, '시길 전투의 전조를 알린 시장 동향'이 매우 유용했다. 빈트 하미드는 1일 전쟁에 앞선 1년여 동안 마법 무기와 차원 주문 스크롤 등이 급격히, 그러나 암암리에 마계로 흘러가는 경향을 주로 분석했으며, 필자가 찾는 물건들 역시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전략) 또 하나 이러한 '거래 세탁' 과정을 거쳐 마계로 흘러들어간 물품으로는 아스트랄 자석 (Astral Lodestone)이 있다. 아스트랄 물질에 이끌리는 속성이 있는 이 돌은 아스트랄계로 가는 마법 장치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여러 가지 마법 실험과 초능력 증폭에도 중요한 물품이다. 이 비싸고 희귀한 물품을 단일 거래상이 일시에 사들여서 마계로 보냈다면 분명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분석한 대로 이들 상품은 많은 소규모 상인을 거치고 때로는 여러 차원을 지나 마계로 운송되었고, 따라서 바토르나 어비스에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양을 사들이는지 당시에는 알아채기 어려웠다.

시길 시장

이러한 중간상과 거래 경로를 분석한 결과 돌파 사건 전 2년 동안 바테주의 연간 아스트랄 자석 매수량은 전년까지의 평균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해 약 350파운드에 달했다. 시길 전투의 기록 및 핀드 군대가 물러난 후에 남은 무기나 마법 물품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길 전투에서 바테주의 아스트랄 자석 실제 사용은 미미했다. (시길 전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거래 물품에 대해서는 3장의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따라서 정확히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아스트랄 자석은 블러드 워를 지탱하는 통상의 작용 속에 임박한 위험이 얼마나 쉽게 묻힐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후략)

돌파 사건 전에 바테주가 아스트랄 자석을 비교적 단기간 동안 갑자기 많이 사들였다는 점에서 이는 1일 전쟁과 관련이 있는 구매였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반면 실제 시길 전투에서 사용된 양은 많지 않았다고 빈트 하미드는 보고하고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스트랄 자석은 아스트랄계로 가는 장치의 재료가 된다는 언급이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필자가 이전 글 악마의 거래에서 소개한 보고서를 보면 수끌리어는 기스제라이와 기스양키가 협력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바테주에게 맡겼다. 라크마에서 필자의 친구가 진술한 내용 중에는 기스제라이가 아스트랄계를 직접 공격한 것처럼 보이는 의혹투성이 사건이 나온다. 이 기묘한 선제 공격의 배후에 바테주가 있었다고 한다면 바토르에서 아스트랄계 이동용 마법 물품의 재료를 갑자기 많이 사들인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시장 동향'의 부록을 보면 돌파 사건이 가까워오면서 바테주의 구매가 늘어난 물품 목록이 나온다. 여기 열거한 물품은 역시 3장에 나온, 시길 전투에서 많이 활용된 물품 목록에서는 순위가 아주 낮거나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 표시는 정상 경로로 구할 수 없는 장물을 가리킨다.

기스제라이 무구

  • 카라크 무기 - 10여 자루 (파손 물품 포함), 전년까지 구매는 평균 1년에 두 자루
  • 기스양키 은검* - 두 자루, 전년까지 구매 전무
  • 기스제라이 제작 무기 (모두 합산) - 약 60자루 (파손 물품 포함), 전년까지의 평균에 비해 300% 증가
  • 기스양키 제작 무기 (모두 합산) - 약 40자루 (파손 물품 포함), 전년까지 평균에 비해 400% 증가
  • 기스제라이 갑옷 (부분 및 전체) - 약 80벌 분량 (파손 물품 포함), 전년까지 구매 전무
  • 기스양키 갑옷 (부분 및 전체) - 약 50벌 분량 (파손 물품 포함), 전년까지 구매 전무

특히 상품 가치가 없어서 폐기되었을 파손 물품까지 고물상을 통해 떨이로 사들였다는 사실이 흥미를 자극한다. 파손된 무기나 갑옷이 전투에서 발휘하는 가치는 거의 없었겠지만, 전투의 '증거'로 일부러 뿌려두기에는 더없이 좋지 않은가.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짐작해볼 때 바테주와 일리시드가 협력하여 기스양키가 기스제라이를, 혹은 기스제라이가 기스양키를 공격한 것처럼 학살극을 조작해 이들 두 종족을 더욱 이간질했다고 생각할 근거는 충분하다고 본다.

결국 라이잔마라켄이 일리시드와 타나리, 바테주의 음모에 대해 동족에게 경고하려고 해도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일리시드와 바테주의 획책이 두 종족간 증오를 부추긴 것이 원인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동족에게 외면당한 라이잔과 마라켄은 서로밖에 의지할 존재가 없이 함께 다른 수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멀티버스 곳곳에서 행동을 같이하면서 라이잔과 마라켄은 무엇을 조사했을까? 어쩌면 빈트 하미드가 모은 자료에 나온 것과 같은, 기스양키와 기스제라이가 이간질당했다는 증거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일리시드와 핀드들의 음모를 저지할 길을 찾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이라면 그들의 노력은 돌파 사건을 막지 못했으며 그 파괴의 물결 속에서 두 사람은 목숨까지 잃었다는 점이다. 결국 엔트로피는 자신의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니.

1) 욕망하는 활동이 아무리 생산적으로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파괴에 대한 욕구라고 필자는 믿지만, 그 점은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댓글

소년H, %2007/%09/%09 %12:%Sep:

무척 낯익은 얼굴이 (…)

아무튼 갑자기 경제적 증거군요. 약간 앞의 걸 받치는 부분만 있는 듯도 보이지만요.

 
로키, %2007/%09/%09 %21:%Sep:

다 늙어서 모델이 된 다콘이었습..(..?)

뭐 정확히는 라크마에서 제시한 질문에 답하는 성격이랄까요. 바테주가 이간질했다는 건 라크마에서는 암시만 됐지 주장한 내용은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둘을 하나의 글로 쓸까도 했는데 우선 연구자금이 덜 나오고(..) 또 스타일이 전혀 다른 글이라서 그냥 두 편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