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차이

“그래서, 이제 몇 명이나 남았나?”

공기는 눅눅했고, 주변에는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가득했다. 나무 밑에 앉은 두 남자는 비내리는 숲의 모습을 가만히 내다보았다.

“이백 삼십 일명.”

느긋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나무에 기대앉은 남자는 레이피어를 천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귀족적인 태도와 몸가짐, 깔끔한 옷과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는 거칠고 외딴 장소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회갈색 눈은 아름다웠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기묘한 빛을 띈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뒤틀려버린 열정과 지성의 흔적, 걷잡을 수도, 꺼지지도 않는 불길을.

“많구만.”

처음 질문을 던진 남자는 나무 반대편에 기대앉은 채 작은 조약돌을 한가로이 주워다 던졌다. 헝클어진 머리와 비바람과 햇빛의 흔적이 남은 얼굴, 소박하고 실용적인 옷에는 야외 생활에 익숙한 시골 사내의 삶이 그대로 묻어났지만, 눈에 드리운 그늘과 굳게 다문 입매는 첫인상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은 왕초가 문제 아냐?”

바께로1)는 말을 이었다.

“명령을 내린 것은 뒤 뜨와이유니까 놈만 잡으면…”

그 말에 돈2)이 머리를 젓자 잘 다듬은 검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아니. 단 한 놈도 용서할 수는 없다.”

돈은 이를 악물었다.

“내 가족이 그 화염지옥 속에 죽어갔는데, 놈들 중 하나라도 멀쩡하게 살려둘 수는 없어.”

그는 반쯤 고개를 돌려 나무 반대편의 바께로를 슬쩍 돌아보았다.

“설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그 목소리에 담긴 경고에 바께로는 잠시 얼굴이 굳었다가 나무둥치에 머리를 기대며 저 위의 나뭇잎과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흔들리고 말 게 있나. 몽테뉴 놈들이 뭐가 예쁘다고.”

“뭐 모두 몽테뉴 놈은 아니지만.”

돈은 어깨를 으쓱했다.

“외국 용병이라고 해서 용서하지는 않아.”

“외국…?”

바께로가 혼자 중얼거리는 동안 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아세도에는 끝내 같이 가지 않을 생각인가.”

돈의 물음에 바께로는 고개를 저었다.

“알타미라로 돌아가봐야지. 로스 바고스에도 다시 보고를 해야 그치들을 떼어놓을 수 있고.”

“또 알타미라인가.”

한심하다는 돈의 목소리에 바께로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뜻이지.”

“그냥 여자가 보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하지 그러나.”

돈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맴돌았다.

“아니면 아예 이번에는 데리고 나와버리면 어때.”

“데려와서, 이런 멋진 곳들을 구경하며 쫓겨다니라고?”

바께로는 고갯짓으로 음습한 숲을 가리켰다.

“그래서 혼자 그녀를 위해 희생하겠다 이건가. 갸륵하군.”

돈은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 누구.. 수 브리얀떼스?3) 수 루스?4) 아마릴리스를 위해서 말이지.”

바께로가 노려보자 돈은 손을 펼쳐보였다.

“잠꼬대를 하더군.”

“사악한 마법사 때문에 과부가 되었다고 그녀에게 치욕은 없으니까.”

바께로는 가죽을 덧댄 바지를 털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결혼 서약을 깨는 것과는 달리.”

“감동적이야.”

돈은 칼을 흐린 빛에 비추어보다가 칼집에 집어넣었다.

“어쨌든 다음에는 란쵸 리베라에서 보도록 하지.”

바께로는 별 대답 없이 잠시 하늘을 올려보다가 돈의 발걸음이 멀어져가는 것을 듣고 걸음을 옮겼다. 비내리는 숲의 오후는 천천히 저녁으로 저물어갔다.

1) vaquero:카우보이
2) Don:경
3) su brillantez: 너의 광채
4) su luz: 너의 빛

댓글

오승한, %2008/%10/%23 %13:%Oct:

돈은 엘리아스일테고, 바께로는 누구일까(딴 청).

 
로키, %2008/%11/%01 %22:%Nov:

엘리아스가 찰랑이는 검은 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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