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퀄름의 일기 #1. 시길의 날

축제다. 나는 창 밖을 본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그들 뇌에 즐거움이 쌓인다. 절로 군침이 돈다. 뇌를 먹으면 그 뇌에 쌓인 지식을 맛본다. 경험을 맛본다. 감정을 맛본다. 숨은 끊어지지만 기억은 내게 이어진다.

불의의 사고가 없다면 나의 뇌는 저 위대한 엘더브레인에 흡수될 것이다. 그 속에서 내 인격이 살아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때도 분명히 내 경험은 살아남는다. 엘더브레인은 바다. 세상의 모든 경험은 바다로 합류해 영원해진다.

삶은 덧없다. 어떤 생물이든 반드시 죽는다.

죽음과 함께 소멸되는 경험은 덧없다. 오로지 일리시드에 의한 죽음만이, 덧없음을 피하는 길이다.

모든 경험의 덧없음을 제거하기엔 우린 아직 무력하다. 축제날의 즐거운 경험들은 우리의 무력함을 원망하며 소멸해간다.

모든 경험의 덧없음이 소멸하는 그 날.

모든 경험이 거대한 바다, 엘더브레인으로 향하는 도도한 흐름에 몸을 싣는 그 날.

그 날을 향한 길에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댓글

로키, %2007/%09/%13 %00:%Sep:

덜덜..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이질적인 지성에게도 나름의 동기와 정당화가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는 글이군요. 단순히 악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나름 행동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이 더욱 무서운 것 같습니다.

 
오승한, %2007/%09/%13 %00:%Sep:

어찌 보면 자애로움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신들의 모든 경험을 기억해 주겠어요.(그러니까 머리를 이쪽으로…)”

 
Forgotten, %2007/%09/%13 %13:%Sep:

문제는 저 엘더 브레인은 저런 식으로 일리시드들의 뇌를 흡수하는 기가막힌 낚시 전술을 구사한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