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의 대가

사과문

마라켄의 성별 사건에 관련하여 필자가 발견한 증거 중 상당수가 신뢰성이 불충분하거나, 필자가 그 본래의 뜻을 잘못 해석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필자는 <'두' 전쟁의 여신>에서 언급한 일체의 주장을 철회하며, 본의 아니게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하여 존경하는 카누메아스 및 여러 동료학자들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

“계획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버네이의 담담한 목소리에서는 분노도, 실망도 섞여있지 않았다. 그 점이 더 울화를 치밀게 만들었다.

“조사를 해 봤는데, 당신께 접근한 음유시인이라는 사람은 아나키스트(Anarchists) 중 하나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마라킨의 기록은 마법적으로 변형시킨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그 책들 역시 아나키스트들이 대여했었더군요. 그 목격자라는 사람들과 아나키스트들이 접촉한 사실도 파악 되었죠. 그 녀석들, '애국심 고취 캠페인'에 그토록 악을 쓰면서 비난을 하더니만… 이번에 제대로 한 방 먹었습니다.”

망할 놈들. 구울밥으로 만들어주겠다.

“그 정도로 그들을 공개적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어요… 물증이 부족합니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이런 수작은 사이가 안 좋은 당파들 사이에서는 일상다반사니까요.”

나는 이를 갈면서 버네이가 건네준 위스키를 주욱 들이켰다. 타오르는 듯 뜨거워지는 목구멍과 달리, 머리 속은 차가운 냉정을 되찾아갔다.

“이래서 내가 숨쉬는 놈들 말은 못 믿겠다는 거야.”

“당신도 살아있지 않습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유령이 되는 걸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군.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만약 이번에 당신이 어떻게든 논쟁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아나키스트들이 '사실 이건 우리가 꾸민 일이었다' 라고 나섰다면 이 일뿐만이 아니라 라이잔과 마라켄에 대해 우리가 발견한 사실 전부가 신뢰성을 의심받게 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아나키스트들은 그걸 더 바랬을지도 모르겠지요.”

결국 웃음거리가 되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다 이거지- 다시 혀 끝까지 튀어나온 빈정거림을 위스키 두 잔째와 함께 속으로 삼켜 넣었다. 내가 성질을 부릴 쪽은 이 사람이 아니다.

“이번 일은 무척 유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분들은 현재까지 우리 도시 홍보부가 이룬 것들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러워하십니다. 라이잔과 마라켄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면서 거버너 당원 가입자가 전년 같은 달 대비 3% 증가하였고, 범죄율 역시 4% 가량 떨어졌습니다. 곧 추가 연구비가 들어올 예정이니 모르트 씨는 계속 연구를 진행해 주십시오.”

***

버네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이미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티본은 문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충실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아, 돌아가자.

티본의 두개골이 잠시 움찔거리더니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바빠질거다. 죽은 이들을 부를 일이 많아질꺼야. 정말이지, 산 녀석들은 못 믿겠다니까.”

망자(亡者)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은 산 자들을 싫어하며 속마음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정확한 계약과 올바른 주문 사용법을 엄수한다면 항상 진실만을 고한다. 거짓말을 하는 건 오직 산 자와 덜 죽은 얼간이들 - 소위 뱀파이어나 리치 같은 자들 - 뿐이다. 조금 귀찮다고 정공법 대신 요령을 쓰다니, 나도 많이 게을러졌군.

그 때, 건물 저 편에 서 있던 남자 몇 명이 킬킬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얼치기 역사학자' '썬데이 시길 편집장'

분명히 전에 들었던 목소리이다…… 아아, 그래. “마라켄은 여자였다.” 라고 내게 증언한 녀석들이었지. 내가 무어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그들은 골목 속으로 몸을 숨겨 사라졌다.

티본. 저들이 날 우습게 보고 있구나.

나는 조용히 주문을 읊조려, 거리를 떠도는 그림자들을 불러모았다.

망자의 주인이 명하노라. 내 분노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 가라.

오늘 밤 저들은 똑똑히 배우게 될 것이다. 네크로맨서를 조롱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이며, 무슨 대가를 치뤄야 하는지를.

댓글

오승한, %2007/%08/%28 %18:%Aug:

…;ㅅ;

 
로키, %2007/%08/%28 %21:%Aug:

안습의 알 모르트네요. 그건 그렇고 두 전쟁의 여신 얘기는 마라켄과 라이잔 외에 다른 사람 얘기였다고 써먹어볼까 했었는데 한 발 늦었군요.(?) 뭐 얘기 돼가는 걸 봐서 나중에 다시 조사해 보니 진짜 그런 노래가 있었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겠네요. (뒤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