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情事)후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나른한 만족감이 찾아온다.

그는 조용히 잠들어 있다. 정복왕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는,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순진한 아이의 얼굴이 드러나 있다.
내 손목에는 낙인이 새겨져 있다. 마법사 마그누스가 '오직 이 남자만을 사랑하고, 이 남자만을 원하리라' 라는 저주와 함께 내 손목에 새긴 낙인.
그는 이 것만을 믿고 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마법사는 요정을 너무 얕보고 있다.
나를 속박하는 것은 이 따위 낙인이 아닌 내 스스로의 마음.
요정의 기사로서 이 남자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정한 나의 맹세.

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루에 몇 번씩이고 그를 괴롭히는 성가신 날파리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안개 저편의 내 고향으로 끌고 가는 상상을 한다.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부수어버리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나만을 위한 밀어를 속삭이게 하고 싶다.
그가 내 위에서 헐떡이며 귀여운 소리를 낼때는 인간으로서 상상도 못할 금단의 고통과 쾌락을 선사하고 싶다는 욕망에 몸을 떤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 그가 바라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단 한번, 그가 나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 적이 있다.
언제였더라, 듣도보도 못한 신의 이름을 웅얼거리며 그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던 어떤 남자의 목을 베었을 때였던가?
그의 싸늘한 눈동자에 마음이 갈갈히 찢어졌다.
그의 성난 목소리에 어린 계집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용서를 빌고 맹세를 했다. 다시는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겠노라고.

어떤 이는 말한다. 저 장군은 왕을 섬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천고의 충신이라고.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왕만을 바라보다가 바다의 여왕에게 상대를 빼앗긴 한심한 계집이라고.
하지만 인간들아, 나는 이미 원하는 것을 얻었노라.
왕의 마음은 영원히 요정의 기사의 것.
내가 얻은 단 하나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