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의 도가니

“어이, 여기 누구 좀 도와줄 사람 없어?”

“예, 가요가요~”

베리티는 각자 축제준비로 분주한 학생들 사이를 헤치고 2학년 선배의 맞은편에서 테이블을 들었다. 웃차… 목제 테이블은 무겁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들 만했다.

“자, 그럼 이렇게 돌려서 놓자. 아니다, 채광을 받으려면 이쪽이 좋겠어. 창쪽으로 좀 더 와줄래?”

탁자의 무게가 손을 눌러오면서 어깨와 팔이 저리기 시작했지만 베리티는 잰걸음으로 열심히 선배를 따라갔다. 아무 도움 되는 것도 없는데 이거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지.

“됐다. 자 바로 이 위치대로 조심조심 내려놓아줘요.”

몰려오는 안도감을 느끼며 베리티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작은 일이지만 해냈다. 이렇게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

“야 야, 하지 마!!”

로빈? 막 돌아보려는 찰나 터억 하고 등에 충격이 부딪혀왔다.

“꺄악!”

가뜩이나 떨리던 다리가 바로 풀리면서 베리티는 탁자를 놓쳐버렸다. 쿵, 하고 테이블이 바닥에 부딪히고는 꿍! 하고 무릎이 바닥을 찧더니 꽝! 하고 이마가 테이블을 박으면서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괜찮아?”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싸쥐고 올려다보자 로빈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은 왜 항상… 왜 뭐 하나라도 잘해보려고 하면 나타나서…

“정말 미안해, 베리티! 저 녀석들이 장난을 쳐서. 양호실로 데려다줄게.”

로빈 뒤편에는 항상 어울리는 두 친구들이 아직 웃음기가 가지지 않은 얼굴로 머쓱하게 서있었다.

“필요없어. 나 혼자 갈 거야.”

베리티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펴고 일어섰다. 눈에 고이는 눈물은 이마와 무릎의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냐, 나 때문이잖아. 도와줄게!”

로빈의 손이 어깨에 닿자 마치 스위치를 켠 듯, 평생 한손에 꼽을 만큼 느꼈던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에 치솟았다. 왜 로빈에게는 항상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한심한 옛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저리 가란 말야!”

그를 밀쳐내는 순간 이전 그때처럼 찌릿거리는 전류 같은 기분이 팔을 따라 흘렀다.

로빈은 휙 공중을 날아 방 저편에 모아둔 화환을 쓰러뜨리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베리티는 두 손을 입에 가져갔다. 마치 비명을 잡아누르듯.

“아야…”

그가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 앉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크게 뜬 눈들과 가리키는 손가락들, 벌어진 입들이 눈에 들어왔다. 웅성거리는 목소리 속에 목소리가 몇 가닥 잡혔다.

“뭐야, 쟤 마력 있었어?”

“그거야 로메로 선배도 그렇지만 올해 신입생 중엔 없댔는데.”

“무섭다 야. 화난다고 마법 막 쓸 거면 연금학부는 왜 들어왔대?”

지켜보면서 선뜻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로메로 선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놀란 표정이 가라앉으면서 심각해지는 모습에 베리티는 가슴이 아프도록 뛰었다. 얼마나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할까. 입학할 때부터 거짓말을 했다고, 화에 겨워 마법을 막 쓴다고. 분명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베리티…”

친구들에게 부축받아 로빈이 비틀 일어서고 있었다. 이렇게 됐는데도 원망하는 기색조차도 없는 안타까운 표정에 베리티는 왠지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았다.

'너 때문이야.'

베리티는 홱 돌아서서 달려갔다.

'선배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리자와 모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지만 베리티는 멈추지 않았다. 모두 앞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모습까지 보일 수는 없었다. 지금은 혼자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복도는 어둡고 먼지 냄새가 났다. 얼마나 달렸을까, 사람과 빛이 있는 곳은 모두 피하다보니 성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역까지 온 것 같았다. 지쳐서 달릴 수조차 없게 되어 이제는 하염없이 걸으며 베리티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돌아가려고 해도 길을 찾을 수나 있을까? 돌아간다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순간 누군가 불렀다는 생각에 베리티는 우뚝 멈춰섰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착각이었다. 누가 베리티 러브를 찾으러 여기까지 올까.

마치 누군가 고개를 잡아끄는 듯 시선이 복도 오른쪽으로 향했다. 양쪽으로 열리는 문짝 한쪽이 빼꼼히 열려있었다. 저 안에서 잠시 앉아서 쉴 수 있을까? 가서 문을 열자 끼익- 소리에 흠칫했지만, 기다려봐도 인기척은 없었다.

방안에 들어서면서 베리티는 먼지에 몇 번이나 재채기를 했다. 이곳은 일종의 창고인 듯, 천을 뒤집어쓴 각종 잡동사니가 어둠 속에 불명확한 윤곽을 그렸다. 두리번거리다가 책더미에 발이 걸린 베리티는 책이 와르르 무너지는 사이 나무장 하나를 붙잡고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흔들거리는 장을 넘어지지 않게 꽉 잡으면서 정면을 보자 마주친 것은…

“으악!! 해, 해해해해, 해…”

베리티는 황급히 뒷걸음질쳤다. 양초 두 대 사이에 마치 웃는 것 같은 두개골은 어스름한 빛 속에서 더욱 섬뜩했다.

딱딱한 모서리가 엉덩이에 닿자 베리티는 멈칫했다. 돌아보자 연금술 실습 시간에 다뤄본 것과 비슷한 작업대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오래되어 보이는 사발과 막자, 레토르트대, 전열 사반, 그리고…

“예쁜 도가니네.”

마치 잡아끌리듯 베리티는 작업대 한가운데의 용기를 들어올렸다. 한때 뜨거운 열을 견디며 가장 순도높은 물질만 남겼을 두터운 도자기에는 마치 다정한 손길 같은 온기가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표면은 매끈했지만 안쪽에는 흐르는 듯한 문양 혹은 글씨가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창에 친 커튼 너머로 은빛이 반짝였다. 베리티는 도가니를 조심스레 양손에 붙들고 창가로 가서 묵직한 커튼을 한켠으로 밀쳤다. 그 틈새로 흘러드는 달빛에 비추자 도가니 안쪽의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도가니는 생의 연금술을 행하는 영혼의 그릇일지니 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라고?”

베리티는 눈을 크게 떴다. 연금술학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 축제의 대항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바로 그…

손안에 든 도가니가 갑자기 웅- 하고 진동하자 베리티는 손을 놓칠 뻔했다. 진동이 더욱 심해지기만 하면서 손이 얼얼해졌다. 떨어뜨리기 전에 안전하게 내려놓으려고 베리티는 몸을 숙였다.

도가니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나오자 베리티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진동소리와 감은 눈꺼풀을 통해서도 환한 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속에 목소리가 울리는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나의 친우여…

이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이 온다면-

지금이다.

쩌억. 베리티는 홱 고개를 돌려 도가니를 쳐다보았다. 손안에 든 도가니가 반으로, 그리고 그 반이 무수한 조각으로 갈라지는 모습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가니에서 뿜어져나오던 빛도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고 방안에는 달빛과 정적만 남았다. 그 속에서 베리티의 숨소리가 울렸다. 떨리는 손에서는 도자기 조각이 우스스 떨어져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멍든 무릎이 다시 바닥을 찧었지만 아픔조차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댓글

신천우, %2014/%01/%10 %15:%Jan:

도가니의 떡밥을 물고 저는 과거로 향해보았습니다. 파닥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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