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라노아 네루나 외전

The Dreamer

The Dreamer # 01


“스승님?”

침묵이 감도는 함선의 어느 한켠에서, 명상에 잠긴 스승에게 가만히 다가간 파다완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눈을 뜬 이는, 세월의 바람에 맞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었을 듯한 체격을 가진 중년의 제다이 나이트 클레로 에카테스였다. 짙게 가라앉은 잿빛 눈동자가 잠시 허공을 주시하다 시선을 돌려 그를 깨운 자신의 제자를 올려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린라노아.”

“이대로 가면 조우합니다!”

조타수의 갑작스런 외침에 둘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일단의 제다이들이 모여 심각하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우터 림에 며칠이라도 지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세데스의 기함인 벤전스의 이름이 몇번인가 회자되었고, 한껏 찡그린 얼굴로 계기판을 노려보고 있는 조타수가 돌격대를 지도하고 있던 제다이 나이트 칼레나 할라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자 옆에 서 있던 나이트 라멜이 불안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기대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나이트 에카테스는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벤전스가 돌격선을 막기 위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에요. 결코 말로는 설득될 상대도 아니고, 피한다고 보내줄 상대도 아니니까 상대하는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 기함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렇게 잠입에 성공한 공병대 사람들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으음…”

나이트 에카테스는 대답 대신 팔짱을 낀 채 낮은 목소리로 한숨지었다.

“물론 돌격대의 첫 번째 역할은 분명 시선을 분할시켜 공병대 사람들이 무사히 기함에 잠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두 번째 역할은, 아마도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그 역할은, 그 사람들이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거였어요. 설사 그들이 성공한다 해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임무에서 모든 이가 다치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눈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다이란 처음부터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 어려운 자들이었고, 제다이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은 있었으니까. 아직도 한참이나 어린 나이에 이런 전장에 들어서야 했던 두 제다이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걱정했을지언정 막아서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있어 너무나 이른 경험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그것은 결국 현실적이라는 이름 하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린라노아를 가르침에 있어 그가 단 한 가지 실수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제다이가 가져야 할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다이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많은 제다이들이 신념에 따라 검을 휘두르고, 전장에 뛰어들었으나, 그것은 필요악이었고 아무도 그런 해결방법을 무작정 긍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맞은 제자였던 그녀는 그런 필요악마저도 부정했다.

“이 돌격대에 속한 사람들 중 두어 명이라도 공병대에 합류했다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제다이의 숫자가 많이 모자라는 시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스승님?”

포스의 뜻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러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평온에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채고 놀란 것은 오히려 클레로 에카테스 그 자신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코루선트의 파다완들과는 달리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실전으로 검을 단련해야 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것은 검을 휘두른다는 사실 자체에 무감각해진 자신이 문제였던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린라노아를 변화시킨 것도 클레로 에카테스 그 자신이었다.

“스승님?”

“접촉합니다!”

다시 조타수 아발라의 비명이 들려왔고, 창밖으로는 유령처럼 소리없이 다가오는 상대의 전함을 볼 수 있었다. 제다이들은 허리에 찬 세이버를 꺼내들고 결연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을 세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을 꾸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제다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 꿈을 지키고 언젠가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설사 그것이 결코 이뤄지지 못할 꿈일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꿈이라면.

“린라노아.”

그녀는 벤전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나직한 스승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에카테스는 대답 대신 제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내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함선이 크게 흔들렸고, 린라노아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려다가는 스승의 팔을 붙잡고 간신이 균형을 유지했다. 진중한 공기가 갑작스레 선내를 짓눌렀고, 나이트 에카테스는 라이트세이버를 뽑아들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앞장서마. 뒤를 따르거라.”

어쩌면 그는 제자의 어리숙한, 그러나 찬연하고, 부정할 수 없는 꿈에 감화되었는지도 몰랐다. 전쟁이 이런 꿈을 꾸는 이들을 하나둘씩 집어삼키면 세상은 도대체 어떤 곳이 되어 버릴 것인가. 현실이 꿈을 꾸는 이들을 흔들어 깨우고, 누구도 꿈을 꾸지 않게 되면 그들은 어떤 것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고, 그 자신은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볼 수 없다 해도 포기한다면 과학자가 총을 들고, 외교관이 검을 드는 때는 언제 끝을 보게 될 것인가.

에카테스는 라이트세이버를 손에 든 채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전투의 광기가 열린 탑승구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The Dreamer # 02


데스데모나의 궤도 세관은 어수선했다.

제다이 나이트 린라노아 네루나는 조금 긴장된 듯한 얼굴로 복도를 거닐었다.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장소였으니만큼 통관 절차 때문에 늦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던 그녀는 지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우터 림에서도 인적이 드문 이런 소행성에 그녀가 임무를 받아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녀가 맡았던 대부분의 일은 복잡해진 정세를 안정시킬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으니까. 전쟁 내내 딱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드문 장소인 이곳으로 파견되었다는 말에 린라노아는 의아해했지만, 정확히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미심쩍은 임무였음에도 그녀가 이렇게 이런 외곽까지 찾아오게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몇 분이나 기다렸을까, 린라노아는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그녀를 알아본 듯 얼마 되지 않는 인파를 헤치고 그녀에게 다가왔는데, 린라노아보다 약간 더 큰 키에, 온몸을 검은 로브로 가리고 같은 색의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자였다.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목례했다.

“나이트 베오나드 코티에르.”

“오랜만이구나. 린라노아.”

후드 아래로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코티에르의 표정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린라노아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후드 아래로 복도의 불빛에 새하얀 가면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센타레스 전투 이후로 만나지 못했었지.”

두 개의 옅은 눈동자가 문득 흔들렸다.

파다완이었던 린라노아의 스승을 앗아간 전투가 끝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과 제다이들의 목숨을 가져간 전쟁이 끝난 지는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에 그 반년은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마음의 시계가 현실의 시간마저 느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처를 없애기에 충분한 시간도 더더욱 아니었다.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던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내 침묵이 흘렀고, 코티에르는 그가 잘 알고 지내던 이가 평소처럼 그를 대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는지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이런 어수선한 곳에 머물러서 좋을 것은 없겠지. 일단 내려가서 마저 이야기하자꾸나.”

그렇게 말하며 먼저 걸음을 옮기는 그를 바라보던 린라노아는 그를 쫓아 걸음을 옮기려 몸을 돌렸는데, 그때 로브 자락 사이로 허리에 찬 라이트세이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나이트 코티에르는 왜 그것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왔는지 의아해하다가는 무엇인가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스승의 검을 들고 다니는군. 네 것은?”

“제 것은 이제 없어요. 쓰지 않을 생각이니까. 이건 그저 들고 다니기에 조금 무거운 기억일 뿐이에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거든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이에요.”

코티에르는 몸을 돌려 린라노아를 마주 보았다.

“네가 검을 뽑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언젠가, 단투인의 연합 장에서 나이트 에카테스와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었으나 한 사람은 어떤 이의 스승이었고, 다른 이는 그 사람을 노예 신분에서 구해 제다이가 될 기회를 준 사람이었기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절친한 사이처럼 어색함 없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그 직후 센타레스 전투가 일어났기에 그 대화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나눈 것이 되었지만.

베오나드 코티에르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자신을 구하려다 스승을 잃어버린 이가 눈앞에 있었기에 그 기억은 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지금 그와 그녀 사이를 갈라놓는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도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만일, 일어난다고 하면?”

그의 시선을 줄곧 피하던 린라노아의 눈동자가 그 질문에 겨우 그를 마주했다. 그녀가 애써 평온을 유지하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요. 코티에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