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틴 추가 설정 (코델리아 라펠)

아스타틴의 어머니, 코델리아 라펠은 서녀이긴 해도 알프 연방의 귀족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처음 가족들과 마주친 순간부터 환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인들마저 나으리가 미망인에게 홀딱 빠져 하룻밤 취해서 얻은 사생아를 데려왔다고 수근거리곤 했으니까. 아버지의 아내들 특히 본부인은 끔찍하게 그녀를 미워해서, 왠지 몸이 허약한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영지 구석 별장 비슷한 곳에 보내버렸다.

굴곡없이 조용히 살던 그녀의 인생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던 건, 우연히 상처입고 거처 앞에 쓰러진 한 엘프을 발견하고 살려내면서. 엘프는 깨어나서 눈을 마주치자마자 도망치려고 했다. 코델리아는 이유를 제시하며 도망치려는 엘프를 설득했고, 엘프는 도망치려는 것을 멈추고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잠시 머문다는 것이 하루 이틀 늘어나긴 했지만.

둘은 조금씩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조금씩 빠져들었다. 두 연인은 내심 그 누구도 그녀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쥐꼬리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지체없이 노예사냥꾼을 불렀을테니까. 귀족과 노예라는 형식을 거치긴 했어도 안힐라스로 가는 배에 올라탔고, 에미넴 숲 근처에 정착했다. 사정을 들은 에미넴 숲의 엘프들은 연인을 내치지 않았고 조금이지만 보호해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둘은 그녀가 어떤 신분이었는지 아는 사람들을 벗어나 풍족하지 않지만 행복하게 지냈다.

코델리아의 가문에서는 거의 버린 자식이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무심하게 반응했을 뿐이었다.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천한 피는 어딜 가지 않는다고 코웃음만 치고 말았다. 그러나 안힐라스로 진출해서 큰 돈을 벌고 정략결혼 이야기가 술술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코델리아는, 그녀의 아버지가 안힐라스에서 막대한 부를 이루지 못했다면, 일종의 상업적 동맹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면 죽을 때까지 눈에 띄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안할리스 내의 상업적 연결선을 이용해서 사는 곳을 알아낸 코델리아의 아버지는, 전갈을 보내 제 발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스타틴이 기억하는 가식적인 남자, 코델리아의 아버지가 보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으리께서 병으로 돌아가시고 계시고 죽기 전에 진심으로 아가씨를 보고 싶어하신다고. 아스타틴의 아버지이자 코델리아의 남편인, 리오르의 설득이 없었다면 가족에게 회의적이었던 그녀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돌아간 그녀는 결혼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혼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세요?' 이제 와서 가문 운운하냐며 혐오감마저 보였다.

그녀의 가문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그걸 사실로 만들어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돌릴 필요를 느꼈다. 코델리아의 아버지는 여차하면 딸의 남편과 아이를 죽일 계획까지 짰다. 물론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집을 감시하도록 시킨 부하가, 코델리아의 엘프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고 한 이종족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보고해왔으니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부하들을 시켜 집을 태우고 부셔서 마치 누군가가 습격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코델리아는 가족들로부터 털이 달린 생물(오크)의 습격으로 남편이 죽고 아들은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충격에서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했고, 아버지의 부하들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집에 갈 수 있었다. 부하들은 코델리아가 도착하기 전에 맡은 임무를 끝냈고, 그녀는 부서지고 불탄 집을 보며 주저앉았다.

오크의 습격이란 말을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아이를 찾아주겠다고 하지만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살려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코델리아는 며칠을 꼬박 앓았다. 억울하게 죽었을 아이와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가문에서 정해준 곳으로 시집을 갔다. 새 남편은 생각 외로 좋은 사람이었고 아들 세렌을 낳으면서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533년 현재. 아스타틴의 이부동생 세렌은 가문, 외모, 능력 그 어디도 빠지지 않고 성격마저 좋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양친, 특히 어머니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종족 노예들에게 너그러웠고 윽박지르거나 벌을 가하는 일이 드물었다. 이 20대 초중반의 청년 역시 양친의 영향을 받아 이종족에게 호의적인 면모를 보이며, 가끔 부하들과 정찰을 한다던지 마을에 갈 때라든지 마주치는 노예 사냥꾼들에게 좀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세렌은 어머니로부터 안할리스에 대해 듣고 자랐고 동경 비슷한 것마저 품고 있었는데, 정작 안할리스로 와서는 이야기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에 조금 혼동스러워하고 갈등하고 있다. 이종족에게 호의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동료 장교들과 부하들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끼는 이 청년에게 가장 미치겠고 골까지 때리는 건 노스탤지어라고 불리는 집단의 습격. 이 집단의 습격은 간격도 없을 뿐더러 지형을 이용하는 전략을 자주 구사하기 때문. 게다가 그 집단을 해결하기 위해 비엘란트.. 그 빌어먹을 놈들과 연합을 한다는 사실을 상관에게 들었다. 불만을 토하는 부하들 입단속을 시켰지만 세렌 역시 한숨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