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쟁의 여신

최근 라이잔과 마라켄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필자는 상당히 재미있는 역사적 자료를 발견하여 이렇게 공개하고자 한다. 비록 일부 낭만주의 역사가들에게는 심히 귀에 거슬리는 사실이기도 하겠지만(아니,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들어하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밝혀야 한다.' 라는 믿음 아래, 마라켄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겠다.

“저 사악하고 사악한 라반투스의 운명을 파멸로 이끈 두 전쟁의 여신들이여.”

하(下)부 구역의 음유시인들에게 전해져 오는(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이잔과 마라켄에 대한 칭송임이 분명한 노래의 한 구절이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는가?

그렇다. '두' 전쟁의 여신이다.

라이잔과 마라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하며, 특히 인기 있는 가설 중 하나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혹은 애정에 가까운 우정)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겠다고 맹세한 비극적인 연인'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존경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카누메아스도 자신의 논문1)에서 암시를 하고 있어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중이다.

허나, 충분히 검증되지도 않은 증거를 가지고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솔한 행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필자가 발견한 ‘마라켄 여성설’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여기 공개하겠다.

시길 대도서관 도서 '고대 기스와 저서몬의 대립에 대한 역사적 탐구’대출기록부 일부 - ‘….X월 X일, 대출자 : 마라켄, 종족 : 기스저라이, 성별 : 여’

두명의 흔적을 쫓던 중, 두 명이 시길에 온 후 고대 기스족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들의 분열과 대립과정에 대한 서적을 대량으로 대여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과 의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기 위해 그 책들을 찾던 도중 나온 자료이다.

이 밖에도, 마라켄의 이름으로 빌린 책들은 2권 정도가 더 있으며, 대여기록부에는 모두 ‘여성’으로 되어 있었다.

하부 구역 생존자들이 묘사한 마라켄의 외모 : “마라켄은 수염을 기르지 않았으며, 목소리는 일반적인 기스져라이에 비해 높고 맑았다.”

마라켄의 외양과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중성적인 외모와 맑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음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사실 기스져라이의 성별을 구별하는 건 타 종족으로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 기스져라이들이 관습처럼 기르던 수염을, 왜 하필 마라켄은 기르지 않았을까? 왜 목소리는 더 높았을까? 그(녀)가 여성이었다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이다.

기스져라이의 사회에서 절대다수의 무승은 남성이다. 마라켄이 기스져라이의 역사상 유래없는 ‘아웃사이더’가 된 것은 그(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논란을 일으킬 생각은 결코 없었으며, 이들의 이야기를 아릅답게 꾸며낼 연인들과 음유시인들의 기대를 깨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