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의 왕, 바다의 여왕

에레모스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이다. 그런 땅에 있는 국가에 바다는 다방면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칼라인 폐하께서 당대의 해상 세력 반트족과 맺은 연맹은 건국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리고 그 연맹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점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하는 자료를 필자는 최근 몇 가지 접하였다.

이중 첫 번째는 글렌포드 대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 뤠이신의 서류 중에서 발견한, 그의 고용인 리이 샨메이의 보고 서신이다. 리이는 타이샨에서 듀리온 군대가 새로 점령한 항구 도시 라겐하임으로1) 물품을 운송하는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다. 이 자리를 빌어 번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진 뤠이신 대인께,

리이 샨메이 삼가 인사 올립니다. 삼산(三山)의 경치도 멀리 떨어진 이 이국의 땅에서 대인께서 평안하시기를 바라며, 라갠항[喇乾航]2)에 갓 도착한바 이렇게 붓을 듭니다.

(중략) 반도 근해에는 노략이 잦고 이 계절에는 폭풍이 심하여 소인은 여러 번 배와 선적을 모두 잃는 불찰을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다행히도 대인의 말씀대로 빤떠[搬得]3)족의 따니러[大柅泐]4)가 여러 척의 배로 호위하여 해적을 쫓아내고 폭풍이 오면 피할 곳으로 안내하여 결국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모두 대인의 하애와 같은 은혜라고 어찌 아니하겠습니까. (후략)

위 서신에서 알 수 있듯 듀리온과 동맹을 맺은 후 벨가스트에서는 배를 보내 보급의 해상 호위 임무를 맡기도 했다. 그들이 직접 보급을 조달하기도 했다는 증거는 국왕폐하의 서기 클레멘티노 형제의 일지에서 엿볼 수 있다.

메헤릿 제 21일

카라스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드위그 늪지대에 흩어진 잔당을 추적하니, 땅이 습하고 비가 내려 곧 식량이 썩고 병이 돌았다. 식량은 부족하고 재무대신이 보낸 보급이 도착하려면 보름은 걸린다고 하니 염려가 크다. 폐하께서 병사들이 먹는 양 이상은 드시지 않겠다고 하시고 오늘은 폐병이 든 병졸에게 친히 외투를 벗어주시니, 폐하께서 먼저 병이 드시지 않기를 데오스께 간구할 따름이다.

메헤릿 제 23일

반트족의 용선(龍船)오늘 아침에 정찰병이 내륙에 침투한 반트족 노략대를 보았다며 달려와 영내에 큰 소란이 일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폐하께서는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셨으나, 뜻밖에도 반트족을 군영으로 직접 이끌고 오셨다. 얕은 물 위에 반트족의 용선(龍船)을 노저어 오는 장대한 체격의 전사들을 보고 반트족의 침략과 약탈을 기억하는 병사들은 무기를 들었으나, 왕께서 말씀하시길 이들은 노략하는 반트족이 아닌 벨가스트 왕국의 동맹이며 식량과 옷을 가져왔다고 하시니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하였다. 보급을 계산한 결과 데오스께 감사하게도 보름 동안은 버틸 수는 있는 양이다.

메헤릿 제 24일

폐하의 막사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데 왕께서는 반트족 전사의 수장을 치하하며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만큼 물건을 구해올 수 있었는지 물으셨다. 다닐이라는 수장은 웃으면서 뭍의 왕은 모르시는 편이 낫다고 대답하였다. 폐하께 아뢰는 태도가 심히 불손하여 함께 있던 장수들이 화를 내었지만 왕께서는 그 뜻을 물으시니, 반트족 전사가 말하길 벨가스트 여왕의 전언이니 알지 못하는 일에는 흉도 없다고 하였다.

식량이 노략한 것임을 깨닫고 나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데오스의 진노를 산다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다닐이라는 자는 크게 비웃더니, 병사들이 신을 부르며 굶는 것이 낫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걷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노한 장수들을 폐하께서 잠잠하라고 하시고 말씀하시길, 내 부하들을 먹이고 입힌 것은 곧 나에게 베푼 은혜이니 어찌 은혜 입은 사람으로서 탓할 수 있겠는가. 책임이 있다면 나에게 있다고 하시니 장수들이 크게 감복하였다. 반트인이 말하길 그대는 나의 왕은 아니나 어째서 사람이 따르는지 알 수 있다고 하니, 저 무례하고 야만스러운 해적마저 알아볼 수 있는 폐하의 성은을 찬양할 일이다.

이 기록에 드러나는 칼라인 폐하의 인품과 부하를 아끼시는 마음은 그를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다닐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조금 다르게 보면, 왜 다닐은 그러면서도 '뭍의 왕'이나 '나의 왕은 아니나' 같은 표현을 굳이 사용했을까? 이렌가르드 여왕의 측근이며 인척인 다닐 마나그슨의 말은 분명 여왕 자신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비상 보급을 전해주면서 보인 다닐의 언행은 이 동맹에서 벨가스트의 위상에 대한 정치적 표현이라는 해석이 성립한다. 분명 다닐은,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이렌가르드 여왕은 벨가스트가 듀리온의 속국이 아니라 평등한 동맹국이라고 강조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벨가스트인들 자신이 동맹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후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 '반역의 고장'으로 매도당한 현 벨레고스트의 역사적 입장을 재조명할 수 있다. 비극적인 그 역사적 오해의 실체를…

그러나 반트족 혼인법의 의미에 대한 케케묵은 노교수의 해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자. 일단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벨가스트가 평등한 동맹이라는 생각은 벨가스트만의 것이었을까? 다음은 이렌가르드의 수도 입성에 대한 왕실의 공식 기록이다.

이니스 강을 거슬러 벨가스트의 용선(龍船) 세 척이 항구로 들어오니, 그 중 첫 번째 배의 뱃전에 벨가스트 여왕 이렌가르드가 선 것을 보고 백성들이 크게 환호하였다. 배에 탄 반트족 전사들이 동전과 팔찌, 목걸이 등을 백성들에게 한 움큼씩 뿌리니 서로 잡으려고 밀치고 밟는 통에 부상자까지 나왔다. 백성들이 이렌가르드를 칭송하여 이는 정녕 우리에게 바다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다의 여왕이라고 하였다. 여왕이 항구에서 내려 전사들과 딸 리에하 공주와 함께 왕궁에 들어오니 폐하께오서는 친우이며 동맹으로 벨가스트 여왕을 맞이하셨다. 오후에는 텔가렌과 메르크, 헤아드의 영주가 왕좌 앞으로 나아와서 충성을 맹세하였다. (후략)

여기서도 바다로 통하는 벨가스트를 부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인식과 함께 벨가스트의 정치적 독립성을 엿볼 수 있다. 기록에서는 칼라인 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한 영주들 목록이 자세히 나오지만, 유독 이렌가르드에 대해서는 그런 언급이 없다. 뿐만 아니라 '영주'가 아니라 이렌가르드에 대해서는 '여왕,' 그 딸에 대해서는 '공주'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서도 그 취급이 확연히 다르다.

이상과 같은 자료를 살펴보면 결국 바다에 면한 왕국 벨가스트는 독립과 통일 전쟁에 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동등한 동맹으로서의 위상은 벨가스트뿐 아니라 왕실에서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사실이야말로 건국을 전후한, 그리고 이후 역사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며, 오늘날 벨게스트 혹은 벨레고스트 지방에 대한 매도와 그 지방 출신에 대한 편견이 역사적 불의라고 필자가 주장하는 많은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이 표기는 라겐하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자는 추정하고 있다. 음의 유사성 외에 '임금 (혹은 하늘)을 칭송하며 물을 건너다'는 뜻풀이는 칼라인 폐하께서 라겐하임을 함락한지 세 달이 채 안 되는 시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3) '반트'로 추정. '옮겨서 이득을 얻다'는 뜻이 있다.
4) '다닐'로 추정. '장대하고 무성하며 돌을 가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