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와 검

내가 그를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주위의 반트족 전사들과 같은 차림으로 주위에 섞여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르스. 오랜 세월 동안 바다의 진정한 제왕이었던 반트인들 중에서도 가장 찬탄받는 무인. 그 무용담에 대한 각양 각색의 찬사 때문에, 나는 무심코 성난 물소와 같이 거대하고, 강력하며, 진한 야성을 그 몸에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그런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여느 반트 청년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올라오고, 통나무 같은 팔뚝을 가진 그를 보면서도 나는 그가 다닐 본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그 얼굴은 준수하다기보다는 곱상했고, 순한 소의 눈과 같이, 커다란 눈망울은 왠지 모를 애수로 가득했다.

반트인들이라 하여 전부 다 용맹한 성품을 갖지는 않았을 테니 이렇게 순한 눈을 가진 사람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이렇게 튼튼한 체격을 갖고도 장군이 되지 못하고 다른 전사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은 그 성격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다닐 장군을 뵙고 싶소. 장군께 전해 주시겠소?”

순간 주위의 전사들이 폭소했지만, 청년이 일어나 한 손을 들자 순식간에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예전에 군사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브레넌 장군의 부대가 장군의 명령 한 마디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손짓 하나로 거친 반트 전사들을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고요 속에서, 그가 조용히, 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마나그의 아들 다닐입니다.”

아라드 공의 수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다닐은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조용하고, 그 인상도 '용맹스러운 전사' 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성품이 소탈해서 자주 병사들과 어울려 지냈다는 기록은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왕국 내에서는 무척 신선하고 새로운 면모였던 것으로, 대부분 “놀랍다” “예상치 못하게” 와 같은 표현을 쓰고 있으나, 간혹 “품위가 없다.” 는 식의 표현도 발견되곤 합니다. 특히나 이는 세렌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는데, 건국왕 전하나 마그누스 공이 없는 자리의 세렌 장군은 말수가 무척 적고, 그 얼굴에 작은 감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

건국왕 전하의 혼인 이후 다닐은 벨가스트를 떠나 수도에 머무는 시간이 잦아졌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요정의 기사” 와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루스” 중 누가 더 강할까와 같은 질 낮은 호기심이 난무하였고, 이렌가르드 여왕을 세렌이 핍박하였다던가, 그에 분개한 다닐세렌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져나온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소문이 들린다는 기록은 여러 군데에서 살필 수 있지만, 정작 세렌이렌가르드 여왕, 혹은 다닐과 세렌 사이의 만남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고, 따라서 단순히 누군가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헛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그 소문 자체는 당시 왕국 내에 크게 퍼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렌 장군이 앞으로 나섰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군의 목소리는 평소 - 전하께서 계시지 않는 - 와 같이 조용하고, 담담했다. 다닐이 웃음을 그치게 지시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만 같은 그런 나직하고 작은 목소리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요즘 왕도에선 사람들이 술만 마셨다 하면,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루스' 가 '요정의 기사'를 찢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별의 별 질 낮은 소문들이 파다하게 돌았다. 사실 세렌 장군이 이렌가르드 왕비 전하를 핍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저도 모르게 실소했는데, 진 뤠이신이 실은 남색가로, 돈울프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을 들은 다음으로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나갔고, 그러자 뒤이어서 “왕비 전하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루스가 분개하고 있다. 다닐은 그 자랑하는 도끼로 세렌을 두 조각 내겠다고 반듀아에게 맹세했다.” 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세렌 장군은 말수가 무척 적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의 구 할은 전하나 마그누스 공과 나누는 담소이고, 나머지 일 할은 꼭 필요한 말 뿐이다. 오늘도 느닷없이 찾아와서 “다닐을 만나고 싶어요. 안내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려서, 내 인삿말을 무색하게 만들었었다. 반쯤은 오기로, 이곳까지 오는 내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던져봤지만 한 마디의 대답도 없었다. 그런 세렌 장군이 내뱉은 첫 마디가 저것이었으니. 나는 그 순간 “당신이 나한테 유감이 있는 모양인데, 그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야 잠잠해질까?” 와 같은 협박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기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나는 세간의 소문을 절반 쯤은 믿고 있었다. 앞의 그것 - 세렌 장군과 왕비 전하 - 의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소문을 다닐이 접한 이상 반드시 분노할 것이라는 점은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닐을 처음 본 순간 깨달은 것이다. 적어도 이 남자는 소문만을 듣고 타인을 죽이겠다는 맹세를 내뱉을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쉽게도, 세렌 장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랬지요.”

“아닙니다.” 를 잘못 말한게 아닙니까. 다닐 장군! 그런 내 마음속의 외침을 들을 턱이 없는 그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여성치고는 키가 큰 세렌 장군이었지만, 다닐의 가슴 정도에 미치는게 고작이었기에 다닐은 고개를 숙이고, 세렌 장군은 그런 상대를 올려다 보아야 했다. 순간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언젠가 뤠이신이 말하길, 무인들이 맞겨룰 때에는 함부로 무기를 뽑거나 움직이지 않고, 서로간의 눈을 보고 기도를 짐작한 이후에 비로소 검을 빼어 상대의 숨을 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 두 사람은 상대를 어떻게 “해체할까” 라는 구상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이대로 세렌 장군이 지고 나면 나는 '아데프치오가 세렌 장군을 모살했다.' 는 얼토당토 안한 누명을 덮어 쓸 판인데 그렇다고 다닐이 죽어버리면 벨가스트와의 동맹 지속 여부는 둘째치고, 저 주위에 둘러친 반트 전사들이 문제가 된다. 아마 작별을 고하는 우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닐과 같은 곳으로 억지로 보내 주겠지. 그러니까 세렌 장군이 찾아와서 다닐을 만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지만, 염려한 것처럼 그들은 바로 무기를 빼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살며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렌 장군의 얼굴에 “표정” 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전하나, 마그누스 공 이외의 사람에게 표정을 보인다?

“어리석군요. 끝내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는 이여. 당신은 강해요. 그 도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텐데.”

“저 하늘이, 드넓은 바다가 아름답다 하여 그것을 집 안에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늘과 바다?”

세렌 장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대를 손에 닿는 곳에 두고도?”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당신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요정의 기사여.”

세렌 장군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조각상 같이 차갑고 건조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그녀가 “틀렸어요.” 라고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은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찰나에 담으니까. 얼굴을 굳히기 직전에, 그녀는 틀림없이 웃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런데, 묘한 것은 그날 이후 세렌 장군이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에 다닐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인사 정도를 나누는 정도였지만. 어안이 벙벙한 내게 뤠이신이 조용히 말했다. 자신의 고향에는 [동병상련] 이라는 말이 있다고.

아라드 공이 줄곧 걱정한 것과 같이, 벨가스트의 도끼와 제이피리스의 검이 서로 날카로움을 겨루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소문도 곧 잠잠해지고 맙니다.

기록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세렌은 극히 적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터놓고 지낸 모양입니다. 정확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말만 내뱉고, 상대의 말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는 모습은 아라드 공의 기록 이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보여집니다. 그런 성향은 전장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세렌 장군은 목소리가 큰 부관을 여럿 데리고 다니면서,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 지시조차 “공격.” “이동” 정도였다고 하니. 그 수많은 승리가 세밀한 전술에 의한 것이 아님은 자명한 노릇입니다. 대부분의 전투 기록에서, 세렌은 “적진에 난입해서” “접근하는 병사를 풀 베듯 베어 넘기고” “적의 지휘관의 목을 단번에 베어서 승리하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적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해 다소 과장된 표현을 썼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용맹이 아닌 것은 확실하며, 또한 그 일신의 무용으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반대로 다닐은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루스' 라고 불린 용장임에도 평소에는 순박한 인상의 호인으로 보인다는 평이 대부분으로, 벨가스트 집단의 우두머리 1) 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늘 병사들과 어울려 지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전공도 병사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얻어낸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상당한 전략가였다고 합니다.

결국, 세렌이 제거되었을 때 그를 슬퍼한 것은 친우들 뿐이었지만, 다닐이 후에 왕궁을 떠나 벨가스트로 향했을 때에는 수많은 반트 전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하니 인망의 차이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어쩌면, 그 인망의 차이가 두 사람의 수명을 가른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1) 여왕 이렌가르드가 건국왕 전하와 혼인하여 듀리온 왕국의 왕비가 되었고, 그 아들 브란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듀리온 왕국에 거주하고 있는 벨가스트인 중 가장 높은 인물은 다닐이라고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