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이것이 무슨 일인가!”

키카 크고 덩치가 떡 벌어진 사내는 복도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부하와 식솔들이 양옆과 뒤에서 따르느라 어수선한 복도에는 그의 불안과 분노가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되어 몰아쳤다.

“사.. 사고였다고 합니다. 낙마하셔서 그만…”

옆에 따르는 노인은 지칠대로 지쳐 무인들과 보조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정다감한 얼굴에는 슬픔과 피로의 주름이 깊게 패였다.

“면목이 없습니다, 요제프 나으리. 그저 제 불찰-”

조용한 복도에 들어서 방문 앞에 도착한 요제프는 노인를 무표정하게 돌아보았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세나, 프리츠. 가서 좀 쉬도록 하게.”

그리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숙연한 방안에서 서로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던 여자들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피묻은 천을 빨던 젊은 여자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요제프에게 다가왔다.

“나으리, 마님은 지금 안정을 취하셔야..”

“잠깐이면 된다.”

하녀의 떨리는 속삭임을 요제프는 낮은, 그러나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목소리로 막았다. 하녀는 뭔가 더 항의하려는 기색이었지만, 요제프가 그녀를 바로 지나쳐 안쪽 문을 열자 막지는 않았다.

햇빛이 길게 비쳐드는 창가 침대에 누운 여인은 커다란 침대에 비해 한없이 작고 가냘파 보였다.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힘없이 눈을 뜨며 문가의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보…”

“어떻게 된 일이오, 아마릴리스?”

“미안해요.. 아이가…”

아마릴리스의 검은 눈에는 눈물이 고이며 햇살에 반짝였지만, 요제프는 무표정했다.

“그런 말에는 관심 없소. 어떻게 된 일이지?”

“브리사가 갑자기 놀라서 그만 안장에서… 내가 부주의했어요. 다들 승마는 말렸는데 너무 답답해서 그만…”

입술을 깨물며 아마릴리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아래 마당에서는 신경질적으로 히힝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심하게 발길질하고 몸부림을 치는 날씬한 은회색 암말에 마구간지기 둘이 매달려서 마구간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말을 바라보며 요제프는 허리의 권총에 손이 가더니, 말없이 돌아서서 문으로 향했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가 그 모습을 본 아마릴리스는 핼쓱한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요제프…!”

문을 열려던 요제프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아마릴리스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는 몸을 돌렸다.

“무슨 짓이오. 안정을 취해야 하지 않소.”

그가 그녀를 부축하자 아마릴리스는 그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꺼지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안 돼요. 차라리 날 쏴요!”

창밖에, 마구간지기 둘의 손에 끌려 간신히 마구간으로 돌아가는 암말을 보며 요제프는 이를 악물었다.

“브리사가 발정 중이어서 불안한 상태였대요. 요제프, 제발…”

“그리고 당신은 다들 말리는데 굳이 발정 중인 암말을 탔다는 말이지.”

요제프는 천천히 시선을 낮추며 아내의 겁먹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저 말은 결혼 전부터 있었지. 어디서 났다고 했었소?”

“란쵸..”

아마릴리스는 시선을 떨구었다.

“란쵸 야녜스에서 받은 선물이었어요.”

“야녜스라, 알았소.”

정중한, 그러나 뻣뻣한 동작으로 요제프는 그녀를 부축해 침대에 도로 눕혔다.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란쵸 야녜스에 전갈을 보내 저 말을 도로 데려가도록 부탁하겠소.”

그의 말에 아마릴리스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스럽게 순간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정난 암말을 집안에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아내를 보는 그의 시선은 차가웠다.

“쉬도록 하시오.”

아마릴리스의 손등에 입맞추는 동작은 의례적이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에게 대하는 예의처럼.

그의 등뒤로 문이 닫히고 발걸음이 멀어지는 동안 아마릴리스는 기운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백한 뺨 위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댓글

오승한, %2008/%10/%11 %19:%Oct:

이건 전쟁 선포다!

근데 애꿏은 아마릴리스만(…)

 
로키, %2008/%10/%11 %20:%Oct:

아니 뭐가! 난 벤데타(Vendetta)를 보고 당연히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아마릴리스도 '애엄마가' 내지는 '임신한 채' 이단심문회에 끌려가는 안습은 면하게 해주지 않았삼? 난 친절하다고. (먼산)

 
orches, %2008/%10/%11 %20:%Oct:

아마냥 ;ㅅ;.. 브리사 ;ㅅ;

 
로키, %2008/%10/%12 %14:%Oct:

암울암울 (케케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