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리아

교회의 공동묘지 한 구석을 차지하는 그 묘는 돌보는 이가 없이 황량하고 쓸쓸했다.

노부인은 가만히 묘비를 어루만졌다. 그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달콤함과 슬픔, 고통이 뒤섞여 그녀의 마음을 채운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 자신을 미워했던 사람들, 자신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지, 노부인은 조용히 뇌까렸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만큼은, 그 사람만의 얼굴만큼은 세월의 파고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고 그녀의 뇌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노부인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한 때 그녀가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그리고 영혼을 바쳐 그녀를 사랑하던 그 사람이 잠든 이 곳에서.

“이제서야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되었군요.”

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요제프도, 아르미체도 그녀에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요제프가 망설임 끝에 한 마디를 말해주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대를 사랑했다고.

좀 더 일찍 찾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제야 당신을 볼 용기가 생겼어요.”

그 후의 인생은 평화롭고 느릿하게 흘러갔다. 요제프와의 재결합. 다시 얻은 아이들. 요제프의 은퇴와 정착, 그리고 첫 손녀 득녀까지…

그러나 지금 이 곳에서 그의 묘를 보니, 마치 지난 몇 십 년의 세월이 마치 한 순간의 꿈처럼 느껴졌다. 가장 아름답고 파란만장했던 그 날의 기억이 노부인에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역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나 봐요.”

노부인의 두 눈에서 한 줄기 가늘고 투명한 선이 그어진다.

“나 좀 봐, 이렇게 호호백발 노파가 되었는데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니, 정말 바보 같죠. 나이를 허투루 먹었나 봐요.”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고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 난 행복해요. 아이도 많이 낳고, 지금은 막내손녀 재롱 보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남편도 절 극진히 대해주고 있고… 당신은 투덜댈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번 주에는 이렌느가 아르미체의 문하에 들어갔어요. 아참, 이렌느는 우리 첫째 손녀의 이름이에요…. 원래는 딸을 낳으면 붙여주려고 했는데 다섯 아이 모두 아들이라서… ”

그녀는 마치 연인과 이야기하는 것 마냥 무덤 앞에서 울고, 웃으면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가장 눈부셨던 스무 살의 그 시절, 아름다웠던 처녀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얼마나 이야기했을까. 저 멀리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할머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남자아이. 을씨년한 무덤가도 아이의 생기발랄함은 지울 수 없었다. 노부인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가장 아끼고 귀여워하는 막내 손자. 자신을 어찌나 따르는지 아들 내외가 섭섭해 할 정도이다.

“…어쩌면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서 저런 손주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당신은 나를 구하기 위해 그 미래를 포기했고, 나를 사랑하면서 죽어갔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할머니, 왜 울어요?”

“으응.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고맙고 미안해서?”

아이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머리를 갸웃거렸다.

“근데, 여기에는 누가 있어요?”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어 있는 곳이란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시잖아요?”

“크면 알게 될 거야.”

노부인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일어났다.

“종종 들를께요.”

노부인은 품 안에 간직했던 카밀리아 한 송이를 묘 앞에 놓았다.

카밀리아. 꽃말은 영원한 사랑.

“가자, 엘리아스.”

댓글

오승한, %2008/%10/%24 %18:%Oct:

해피 엔딩. 해피 엔딩.(미리 가드를 취한다)

 
로키, %2008/%10/%24 %18:%Oct:

엘리아스만 죽는 게 해피엔딩이라니! 네 사람 다 죽어야..(음?)

 
오승한, %2008/%10/%25 %01:%Oct:

제목이 카마릴라라니(…) 카밀리아라고 써놓고서는(…)

뱀파이어를 생각하고 있었나;

 
로키, %2008/%10/%31 %21:%Oct:

뱀파이어가 되어 돌아오는 엘리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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