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

좁은 방에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작고 딱딱한 침대 하나와 탁자 하나, 의자 하나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창살을 끼운 좁은 창문으로는 오후의 마지막 빛이 미약하게 비쳐들었다.

마치 햇빛을 잡듯 아마릴리스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댄 채 창살을 잡고 노래하고 있었다. 비록 초췌하고 피로해 보였지만 태도는 차분하고 단정했다. 단순하고 소박한 옷을 입은 채 머리를 깨끗이 뒤로 넘긴 모습에는 마치 수녀 서원자와 같은 엄숙함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먼 곳을 그리는 눈빛으로 부르는 사랑 노래에 아르미체는 순간 아마릴리스라는 여성의 핵심을 엿본 기분이었다. 지식에 대한 진지하고 엄격한 추구와 한 남자에 대한 열렬한 마음 사이에는 처음부터 아무런 모순따위 없었다는 것을. 삶과 세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은 어떤 경험에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열정의 이면에 불과했기에.

노래를 멈추며 돌아보다가 아마릴리스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창살을 놓으며 그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아르미체?”

“안녕하셨습니까, 도냐 아마릴리스.”

“아르미체…”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 눈물이 고여오자 아마릴리스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아르미체는 내심 그런 그녀에게 감사했다. 여기에서 아마릴리스가 이성을 잃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테니.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요…”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오더니 아마릴리스는 따스하게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저 말하고 싶었어요. 고맙고, 미안해요. 이렌느를 결코 잊지 못할 거에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아르미체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어둠 속의 나른한 온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붉은 금빛, 이마에 와닿던 입술, 둘이서 주고받던 은근한 미소, 그의 아내. 어떤 말로도 그 상실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 다시 통곡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감사합니다.”

이렌느를 생각하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하는 것은 적잖이 노력이 들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만큼 냉정했다. 그는 아마릴리스의 손바닥이 위로 오도록 정중하게 그녀의 손을 고쳐잡고 품안에서 반지를 꺼냈다.

“그와 관련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도냐.”

“아르미체?”

아마릴리스는 그와 반지를 번갈아 보았다.

“오래 전에…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천천히 반지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아마릴리스를 놓았다. 그리고 방안에 비스듬하게 비쳐드는 햇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아무 감정 없이 그녀를 마주보았다. 이렇게 냉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때는 던져버렸지만, 우연히 돌려받았습니다.”

엘리아스를 찾으러 밤의 늑대들과 란초 야녜스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이 놀다가 숲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미겔이 돌려준 반지는 세월이 흘러서 그렇게 그의 손에 돌아왔었다. 엘리아스를 찾는 그에게 파밀리아가 아닌 이방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란초 사람들의 눈빛과 함께. 요제프와 늑대들이 란초를 뒤엎듯이 하며 엘리아스를 찾는 동안 반지는 아르미체의 꽉 쥔 손바닥에 파고들었고, 친척들의 눈빛은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아르미체…?”

손바닥을 펼쳐 반지 안쪽의 문구—인 베리타테 에트 카리타테,1) 아르미체가 아마릴리스에게—에 눈길이 미친 아마릴리스의 눈에는 혼란이, 아니, 인정하기 싫은 깨달음이 어렸다. 그 무언의 의문에 아르미체는 차갑고 정확하게 답했다.

“저는 그때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요, 도냐. 그래서 당신과 엘리아스를 보았을 때 그 자리에서 도망쳤습니다.”

아마릴리스는 천천히, 표정 없이 침대에 앉았다.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닥쳐와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도 아르미체는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자책하시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혼자 헤맨 고뇌는 제가 만든 것이지, 당신이나 엘리아스 탓이 아니니까요.”

한없는 미안함과 연민이 담긴 아마릴리스와의 눈빛에서 그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창밖에는 빛이 눈부신 늦오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는 눈을 감았다. 문득 아마릴리스가 다시 조금 전의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불렀던 노래의 흔적이라도 잡을 수 있게. 그러나 그가 하려는 말은 그녀에게 노래를 앗아가리라… 어쩌면 영원히.

“제가 엘리아스를 죽이는 것은 그나 당신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아마릴리스가 작고 날카롭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크게 울렸다. 아르미체는 눈을 뜨고는 창백해진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때에도 제 평생 도냐와 엘리아스만한 친구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겠지요, 그렇게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그리고 그의 마음이며 이성이며 영혼이었던 여인은 이 땅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는지 그 엉킨 실타래를 더듬고 또 더듬어봐도, 결국 남는 것은 그 한 가지 결론뿐.

“아르미체… 부디…”

아마릴리스의 매끄러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낮의 마지막을 불사르는 햇빛에 빛났다. 무엇을 빌려는 것일까. 마음을 돌릴 것을? 엘리아스에 대한 용서를? 기다려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몸을 떨며 고개를 숙이자 반지를 꽉 쥔 손 위에 눈물이 툭툭 떨어질 뿐. 그녀의 침묵 속에서 그는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엘리아스를 죽이는 것은 따로 남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릴리스는 여전히 푹 숙인 고개를 발작적으로 저었지만, 여전히 말은 하지 못했다. 꽉 악문 입술 사이에서는 억누른 흐느낌이 조그맣게 새어나왔다.

그런 그녀를 잠시 보다가 아르미체는 정중히 인사하고 문으로 향했다. 그는 문에 한 손을 얹은 채 잠시 멈추어섰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어디든 자유롭게 가실 수 있습니다, 도냐. 다시 요제프씨 곁으로, 아니면 혼자서라도. 그것이 제가 당신과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겠지요.”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어둑하고 시원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기다리는 셀리스띠나와 목례를 주고받았다. 두 이단심문관은 소리가 울리는 복도를 따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마법사를 붙잡을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심판관님.”

셀리스띠나의 조용한 시선에 그는 답했다.

“그는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그는 지나온 좁은 복도와 복도를 따라 늘어선 감방 문을 돌아보았다.

“그가 찾는 것이 이곳에 있으니까요.”



오체스님 펌프질로 약 백만 년만의 까스띠예 4중주입니다. 이렇게 파국을 향해서! '심판관'이라는 직책은 셀리스띠나의 지위를 표현하려고 한 번 멋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1) In veritate et caritate, 라틴어로 '진실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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