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숲 위로 총성이 울리면서 한떼의 새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대장님, 저쪽..”

부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요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수많은 말발굽 소리가 땅을 진동시키면서 총성이 들려온 지점으로 향했다.


“크리스…”

엘리아스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천천히 쓰러졌다. 몸을 감싸고 있던 불꽃은 스르르 흩어졌고, 어깨를 잡은 손 밑으로는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아르미체는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로 그런 친척을 마주보았다.

“놓쳤군.”

목소리는 아무 감정이 없이 건조했다. 마치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후 더 탈 것이 남지 않은 재처럼. 허리띠에서 다른 총을 꺼내 겨누는 손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게 무슨… 네 처를 죽인 놈이 도망쳤단 말이다,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엘리아스는 고개를 들어 아르미체를, 그리고 자신을 겨눈 총구를 마주보았다.

“크리스, 설마 그걸 나라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

건조한 답변이 그의 말을 끊었다.

“회개의 기도를 할 시간은 주겠다. 아직 할 수 있다면.”

“이 바보놈!”

다가오는 말발굽소리 위로 엘리아스는 고통스럽게 목소리를 쥐어짰다.

“엘 로코는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엉뚱한 놈을 잡고 아, 복수했다 혼자 만족할 셈이냐!”

“만족은 없다. 단지 그래야만 할 뿐.”

아르미체 대신 대답하는 요제프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늑대'들이 공터 주변에 포진하면서 수많은 총구들이 일제히 엘리아스를 겨누었다. 요제프는 말에서 내려 엘리아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젠 돼지놈…!”

엘리아스는 간신히 고개를 들더니 요제프를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요제프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걷어찼고, 드라켄아이젠 부츠의 일격에 엘리아스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가 고통에 떨면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을 요제프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방해하지 말란 말이다…”

엘리아스는 숨을 몰아쉬며 악을 썼다.

“난 그놈을 잡아야 해!”

그가 팔꿈치를 짚으며 일어나려는 순간 요제프는 총상을 입은 어깨를 발로 밟아 짓눌렀다. 몸에서 잡아뜯는 것처럼 울려퍼지는 고통의 절규에 아르미체는 총을 내리고 젊은 용병 몇몇은 외면하거나 귀를 막았지만, 요제프와 '늑대' 대부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요제프가 발을 살짝 들자 비명은 천천히 잦아들었다. 눈을 감은 엘리아스는 식은땀에 젖어 창백해져 있었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요제프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한 만큼이나 위험했다.

“거짓이라면 빠른 죽음은 너무 자비롭다.”

“내가 그랬지…”

속삭이는 엘리아스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쉬어있었다.

“방해하지 말라고.”

천천히 뜬 눈 속에는 불꽃이 붉게 춤추고 있었다.

요제프는 총으로 손을 가져갔지만, 채 움직이기도 전에 공기중에는 갑자기 작은 불빛이 가득했다. 반쯤 탄 나무에서, 땅에 누운 말과 사람의 시체에서 조그마한 반딧불 같은 불꽃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하나하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요제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불똥이 투구의 눈구멍, 팔꿈치와 어깨의 틈새, 들어갈 수 있는 틈이라면 어디나 맹렬하게 파고들자 요제프는 엘리아스를 잊은 채 불꽃들을 쳐내며 투구로 손을 가져갔다.

“대장님!”

밤의 늑대들은 총을 엘리아스에게 겨누었지만, 그 순간 불꽃이 확 오르면서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숲에 남아있던 아주 작은 불씨들이 삽시간에 화염의 벽으로 변하자 말들은 겁에 질린 비명을 질러댔고, 연기와 불꽃의 혼란 와중에 용병들은 엘리아스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쪽이다!”

눈이 날카로운 단원 하나가 위를 가리켰다.

“신이여…”

어디선가 탄식이 터져나왔다. 누군가는 성호를 그었다. 그들이 겁먹은 말들을 제어하고 불길을 피하려는 땅보다 훨씬 위에, 마법사는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꽃 꼭대기를 걷고 있었다. 부상당한 어깨를 꽉 잡은 채, 불길이 마치 움직이는 산인 듯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힘겹게 건너뛰는 모습이 어두워가는 하늘에 기괴한 윤곽을 그렸다.

순간 아연실색했던 용병들이 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총성이 울렸지만, 엘리아스는 이미 화염 위를 걸어 나무 꼭대기로 넘어간 후였다. 총알이 스친 나무들이 푸스스 몸을 떨 뿐, 이미 모습을 감춘 마법사는 떨어져내리지 않았다. 나무에 붙은 불길은 차차 높아가고 있었고, 어스름 속에 연기는 점점 매캐해졌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서 추적한다. 저 몸으로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근엄한 목소리에 늑대들은 돌아보았다.

“대장! 괜찮습니까!”

“퇴각한다.”

투구를 벗은 요제프는 얼굴에 군데군데 가벼운 화상을 입고 있었다. 그를 따라 말에 오른 늑대들은 퍼지는 불길과 경주하듯 숲에서 벗어났다.


“갑옷 벗는 것을 도와주겠나.”

늑대들이 조를 짜서 마법사를 찾으러 흩어진 후, 요제프는 아르미체와 부관 프란츠만 남았을 때에야 입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침착했지만, 긴장하고 굳은 턱선이 고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갑옷을 하나하나 벗겨내면서 요제프의 몸에서는 연기가 올랐다. 프란츠는 숨을 삼켰다.

“어떻게 지금까지 견딘 겁니까, 대장!”

투구를 빨리 벗은 얼굴과 머리는 덜했지만, 조그마한 불꽃이 갑옷 속에서 타들어간 몸은 여기저기 화상을 입고 있었다. 때로는 갑옷을 벗기는 동시에 옷에서 불꽃이 타올라서 프란츠나 아르미체가 덮어서 꺼야 했다.

“드라켄아이젠도 무적은 아닌 모양이야. 마법사놈…”

요제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르미체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미체가 품안에서 단도를 뽑는 동시에 프란츠는 총에 손을 얹으면서 돌아보았다.

“누구냐!”

“카를입니다! '악마의 숲을 지키는 부엉이!'”

암호를 듣고 프란츠는 조금 경계를 늦추었다. 이윽고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차차 늦어지면서 지칠 대로 지친 말과 기수가 모닥불 빛 속으로 들어왔다. 카를은 말에 거의 굴러떨어지듯 하면서 요제프에게 경례했다.

“대장…!”

“무슨 일인가.”

화상을 입은 몸을 무심히 망토로 가리며 요제프는 물었다.

“아마릴리스 마님께서…”

요제프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부하의 다급한 말이 더 빨랐다.

“이단심문회에 끌려가셨습니다!”

댓글

오승한, %2008/%10/%11 %08:%Oct:

고치고 고치고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왠지 이단심문회에서의 일이 이야기의 절정이 될 느낌이 들어.

 
로키, %2008/%10/%12 %13:%Oct:

그리고 아마릴리스에 대해 어떻게 할지 각자 결정하는 게 개인적 갈등이 될 테고. 갈등 전혀 없는 단순남도 하나 있지만(..)

 
orches, %2008/%10/%11 %20:%Oct:

결국 바꾸셨군요. (호소 쪽 묘사도 괜찮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내의 죽음으로 맛간 아르미체, 엘 로꼬를 추격하는 엘리아스, 복수심에 불타는 요제프, 이단심문관에 끌려간 아마릴리스.. 이거.. 갈수록 흉흉해지는 4중주군요 ㅇ←<

 
로키, %2008/%10/%12 %13:%Oct:

호소 쪽도 나쁘진 않았지만 나아갈 방향이 좀 애매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원래 좀 암울하죠, 뭐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