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주게, 친구여

요제프는 오리고기를 뜯으면서 이렌느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지금 어디 있나?” 우물우물.

“상처를 치료한 다음 광에 가두어놨습니다. 지금은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만, 만나보시겠습니까?”

“됐어. 곧 죽을 사람 만나서 뭐 좋은 일이 있겠나. 교회 관계자가 오면 곧바로 넘겨.” 꿀꺽.

“예.”

“그나저나 그 친구도 참 불쌍하군. 사람 하나 구해놓고 마법사라고 쫓기게 되고, 도망친다고 달아난 곳이 하필이면 이렌느 네가 감시하는 구역이라니. 쯔쯔쯔… 그건 그렇고, 이번에 몽테뉴군 포로로 잡은 사람 중에서 장교가 몇 명 있었지? 가족사항 좀 알아봐. 몸값 받아야 하니까.”

생포한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금세 다른 화제로 전환이 되었다. 요제프와 이렌느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업무 중 하나였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는 아르미체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대로 가면 엘리아스는 죽는다.

아르미체는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이렌느. 마법사는 많이 다쳤습니까?”

“어깨를 맞췄으니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왜요? 그 사람하고 아는 사이인가요?”

“예. 그 사람에 대해 말씀 드릴 -”

아르미체가 '것이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려는 순간, 요제프가 손에 든 오리다리를 흔들면서 말허리를 잘랐다.

“지인이었나보군.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이번 일에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게나. 괜히 그 사람 구하겠다고 나서다간 자네까지 곤란해져.”

“그래요. 내 사랑. 자기가 위험에 빠지는 건 절대 안돼요.”

요제프의 냉정한 충고. 이렌느의 따뜻한 염려. 하지만 아르미체에게는 그 어떤 저주와 욕설보다도 마음을 찢어놓는 말이었다. 아르미체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전인들의 '안 돼(Nein)'라는 말은 어떠한 타협도,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 명백한 거부라는 것을.

아르미체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두 아이전인들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몽테뉴 군 장교는……”

“우리 측 사상자 명단은……”

“이번 달 보급품 비용은…..”

저들을 어떻게 설득하지? 마법사지만 내 친구니까 구해달라? 방금 딱 잘라 거절당한 이야기를 다시 하라고?

“그 일은 그렇게 끝내고…. 아참, 그 때 그 일은 알아 봤나?”

“어떤 일 말씀이지요?”

“구혼장 말이야. 까스띠예 어 쓸 줄 알고 연애 좀 해 본 부하 찾아서 쓰라고 한 거.”

“대장님, 아직도 그 계획 포기 못하셨습니까?”

이렌느는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알아볼 가치도 없는 것이라서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우리 용병단에서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에에에, 그럼 까스띠예 어 아는 친구들이라도 찾아서 어떻게든 쓰라고 해봐.”

“그 친구들한테 편지를 맡기면 '나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당장 집을 불태워버리겠다'라고 쓸 겁니다.”

“혹시나 모르지. 눈 먼 까스띠예 아가씨가 '저 남자 박력있군. 쾌남이로다.'라고 하면서 반할지도.”

“가령 편지를 써서 보낸다고 해도, 도대체 그 발상은 뭡니까. 아르시에네가 가문, 리베라 가문, 구스만 가문 등등 여러 가문에 동시에 구혼장을 보낸다는게.”

“한 군데에만 쓰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만에 하나 두 군데 이상에서 구혼을 승락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이구, 그거야말로 행복한 고민의 시작이지.”

잠깐. 아르미체는 귀에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숨을 멈췄다.

있다. 어쩌면 엘리아스를 구할 수도 있는 방법이.

아르미체는 한 여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책을 좋아하고, 잘 웃고, 한 때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사모하던 그녀.

그러나 이 방법은……

엘리아스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녀라면 엘리아스의 죽음을 두고보느니 분명히 이렇게 하리라. 아르미체는 두 사람에게 용서를 빌었다.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자신의 친구와, 연인의 죽음 대신 수치를 감수할 친구의 연인에게.

빼르도네메, 아미고(Perdóneme, amigo). 1)

“그 편지, 제가 써도 되겠습니까?”

두 쌍의 눈동자가 놀란 빛으로 아르미체를 쳐다보았다.

“아르미체. 그게 무슨 말-”

“이야기해보게.”

요제프는 손을 들어 이렌느의 말을 멈추고는, 아르미체에게 턱짓을 했다. 아르미체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게 방안이 있습니다……”

1) 용서해주게, 친구여.

댓글

로키, %2008/%10/%01 %21:%Oct:

아르미체, 엘리아스에게 맞아도 쌌군! (분노) 앞뒤 아귀가 잘 맞고,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가 생생해서 좋네. (오리고기와 요제프!) 아르미체의 갈등도 공감이 가면서 극적이고.

참고로 '아르시에네가 (Arcienega)'는 그 자체로 한 단어임. 그리고 '긴 침묵을 깨고, 아르미체는 입을 열었다.' 하는 대목은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거나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 아르미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요제프와 이렌느는 포로 몸값 얘기를 하고 있었을 테니.

이렌느가 요제프의 부하라는 설정도 재밌네. '자, 충직하게 날 보좌한 상으로 무엇을 줄까' 물으니 '참한 까스띠예 남자 하나 주시어요' 대답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듯도..(..) 그러고 보니 전쟁통에 까스띠예 귀족하고 결혼해서 신분상승을 한 건 요제프보다 이렌느가 먼저였네.

 
오승한, %2008/%10/%01 %22:%Oct:

'아르시에네가'였구나. 언능 고쳤음.

이렌느와 아르미체의 관계는… 첫눈에 반한 이렌느가 일방적으로 대쉬하고 요제프가 옆에서 뽐뿌질 해서 결국 아르미체의 마음도 함락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현재 상황은 결혼 직전, 혹은 결혼 직후 정도?

 
orches, %2008/%10/%03 %23:%Oct:

아무래도 결혼를 한 후 같은데요 (웃음) 오오.. 그렇군요. 하지만 쉽게 결혼시키지 않을 겁니다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