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에

크리스는 엘리가 으스대며 말에 올라타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란쵸 아녜스에 오는 것을 좋아했다. 알타미라보다 훨씬 느긋하게 느껴졌다. 주변 경치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친구인 엘리였다. 말도 살아있는 생명인지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일이 벌어질 때마다 소꿉친구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는 건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니까. 이번에도 그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친구는 유난히 비협조적인 말을 선택했고, 말은 엘리가 완전히 올라타기도 전에 이리저리 달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엘리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말을 진정시켰다. 크리스는 손뼉을 쳤다. 읽던 책을 잠시 제쳐두고 지켜본 보람이 있었다.

“매일 그렇게 해?”

크리스의 질문에, 엘리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냐. 적어도 안토니아 숙모의 잔소리보다는 적을 걸.”

“엄마는 잔소리 하지 않아.”

“아아, 그러셔.” 말이 고개를 다시 흔들었다.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본 엘리는 소리내어 웃었다.

크리스는 소꿉친구가 부드럽게 말의 목을 어루만지는 걸 바라보았다. 엘리는 란초의 말들을 사랑했다. 말들도 그의 애정에 보답했다. 크리스는 말과 엘리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흥분해서 날뛰던 말이, 머리를 휘휘 돌리며 두어번 발을 쿵쿵 굴리기는 해도 얌전해져 있었다.

댓글

로키, %2008/%10/%11 %18:%Oct:

평화로웠던 어린시절! (크지 말거라 얘들아(..)) 의미 있는 장면이 되기에는 좀 너무 짧다는 감도 있지만, 스쳐가는 순간의 스케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orches, %2008/%10/%11 %20:%Oct:

옙, 미래로 갈수록 너무 흉흉해지는지라.. 옛날에는 이랬겠지를 쓰며 잠시 마음의 안정을.. (넙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