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그래서, 아가씨는 나와 결혼하겠다는 것이오?”

“…당신이 그 사람을 풀어주기만 한다면요.”

요제프는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마릴리스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아르시에네가 가문(家門)에 구혼편지를 썼던 건 사실이다. 그녀의 집안은 까스띠예의 명망 높은 학자 가문이고, 아마릴리스 그녀 자신도 '아르시에네가의 꽃' 이라고 불릴 만큼 명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니까. 만일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까스띠예의 사교계에 진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아마릴리스와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소위 ‘비싸디 비싼’ 분이었고, 경쟁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단지 너도 나도 모두가 아마릴리스, 아마릴리스 하고 떠들어대길래 ‘나도 한 번 건드려나 볼까’ 라는 심정으로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아이전의 용병이 그녀와 맺어질 리는 없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이런 심정으로 보낸 것이었는데…

‘뭐라고 편지를 썼더라…’

요제프는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그 편지를 아르미체가 대필해 준 것을 깨닫고 쓴 웃음을 지었다. 까스띠예어를 제대로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자신이 무슨 편지를 쓰겠다고.

“그나저나 아이전 어를 참 잘 하는군.”

“바깥 세상에 관심이 많으니까요.”

그 놈의 까스띠예어를 익히느라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나마 벙어리 아내는 맞지 않겠구나.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군? 그렇지 않소?”

“……”

어쩔 수 없지, 요제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공짜로 굴러들어온 복덩이다. ‘아르시에네가 가문의 사위’라는 배경을 얻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그 이상 바라는 건 과분한 짓이다.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소. 뭐… 노력은 해보겠다만, 일단 당신에게 구혼한 것 자체가 사교계에 입문하기 위한 거였으니까. 알고 있소?”

“알고 있어요.”

“나와 결혼을 하면 엘리…엘라… 음, 어쨌든 그 남자에 대해서는 잊어야 할 거요. 내 앞에서는 이야기도 꺼내지 말아야 하고.”

“그러겠어요.”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아마릴리스를 보면서, 왠지 심통이 난 요제프는 심술궂은 어조로 다시 강조하였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고 자아도취에 빠져있겠지. 하지만 낯선 외국남자와 결혼을 해서, 원하지도 않은 결혼생활과, 원하지도 않은 동침을 하고, 원하지도 않은 자식들을 낳게 될거요. 그때가 되면 ‘그 따위 남자가 무엇이라고 내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려야 했는가’ 라고 후회할거요.”

“…후회하지 않아요.”

도전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아마릴리스를 바라보며, 요제프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것도 나름대로 괜찮겠지. 희생양이 되었다고 질질 짜는 여자보다 자기 자신의 상황을 확실히 깨닫고 발버둥치는 여자 쪽이 더 재미있다.

아마 아르미체는 마법사를 풀어주는 것은 죄라고 말하면서 심하게 화내겠지. 하지만 결국 그는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문, 그리고 그는 나에게 큰 빚을 지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아르미체가 그 남자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제프는 문득 궁금증을 느꼈다.

뭐, 찬성하든 반대하든 결국 후원자인 나의 말을 따라야 할 테니. 상관 없겠지.

요제프는 손을 내밀었다.

“좋소. 거래는 성립이오.”

아마릴리스는 떨리는 손으로 요제프의 손을 맞잡았다.

댓글

로키, %2008/%09/%29 %21:%Sep:

속으로 온갖 계산을 하는 모습이 나름 현실적이랄까..(..)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느낌? 사실 결혼이란 종종 이런 거기도 하고. 조용하면서도 당당한 아마냥도 좋음. '희생타 결혼'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어디선가 본 듯하게, 그러면서도 조금씩 비틀면서 풀어가는 게 재밌네.

그런데 오체스님하고는 아르미체에 대한 생각이 사뭇 다르군! 오체스님, 확 반박해 버리세요! (둥둥둥둥)

 
orches, %2008/%09/%30 %00:%Sep:

나의 아르미체는, 엘리를 풀어주는 것은 죄라고 하지 않다능! 일단 엘리는 마법사 이전에 가족이고, 왠만하면 감싸려고 할 것 같긴 해요. (다만 현재로 가면 모르겠삼..) 토큰 1 걸겠사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요제프가 아르미체의 후원자가 되었는지 궁금해요. +ㅂ+

 
오승한, %2008/%09/%30 %00:%Sep:

(투덜투덜) 좀 더 온건하게 고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