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이름은 엘리아스 가르시아 데 야녜스 (Elías Garcia de Yañez)이며, 크리스 녀석이 제멋대로 부르던 애칭은 '엘리'입니다. 혈통은 귀족이지만 특별히 가진 것 없이 자라난 엘리아스의 환경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평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넓은 초장을 끼고 있는 란쵸 야녜스에서 수많은 친척들과 부대끼면서 또래 친구들과 쏘다니던 어린시절은 풍족하고 행복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야녜스 가문 출신이어서 여름마다 란쵸에 놀러오던 아르미체 크리스띠안과 아주 친했지요.

영특한데다 크리스띠안과 친한 엘리아스를 크리스띠안의 부모는 아들과 함께 공부시켜줄 의향도 있었습니다만, 엘리아스에게 유난히 엄격했던 아버지는 엘리아스가 란쵸를 떠나기는 어리다며 딱 잘라 거절합니다. 결국 엘리아스는 여름이 끝날 때마다 크리스띠안이 란쵸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해가 갈 수록 말이 없어집니다. 아버지와 말다툼하는 횟수는 늘어나지만요.

대신 엘리아스는 야녜스 가의 가업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교배하고 사고파는 일을 점점 많이 담당하게 됩니다. 말이라면 걸음마 하기 전부터 탔고, 가문에서 자기 몫은 해야 했고요. 무엇보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고 편찮아지면서 이전만큼 엘리아스의 행동을 제약하지 못했고 (더 이상 매가 안 듣는 나이(..)), 그만큼 엘리아스는 일과 관련해 전에 없이 여행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 때문에, 그리고 크리스를 보러 겸사겸사 갔던 알타미라에서 촉망받는 재원 아마릴리스 아르시에네가와 마주친 것이 그의 삶을 바꾸어놓습니다. 배운 것 없는 말몰이를 무시하는커녕 그녀는 배움에 대한 그의 숨은 열망을 북돋아주었고, 시간을 쪼개 설명과 토론으로 그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반복하면서 그는 서서히 사랑에 빠지지요.

이때쯤 크리스가 그렇게 열심이던 사제 공부도 내던지고 느닷없이 외국으로 떠나버리자 엘리아스는 친구를 걱정했지만,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릴리스가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으니까요. 나라가 전쟁에 휩쓸리는 혼란 와중에도 그는 사랑하는 아가씨와 달콤한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아마릴리스와의 관계가 깊어지던 중, 귀국해서 란쵸 야녜스에 들른 크리스를 반갑게 맞이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일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가예고스에 몽테뉴 병사들이 나타났을 때 란쵸 야녜스는 아무 대응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비옥한 초장과 마굿간에 쌓아둔 짚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몽테뉴군과 싸우고 불이 붙은 마구간에서 말들을 이끌어 나오던 엘리아스는 아마릴리스가 있는 건물이 화염에 휩싸인 광경에 아연실색합니다.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엘리아스를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이유, 발각되면 엘리아스뿐 아니라 가문 전체가 위험하다고 주지시키고 또 주지시켰던 저주받은 마법. 그 능력은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한 신의 선물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엘리아스는 혼란을 틈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옆문을 통해 건물로 달려들어갑니다. 까스띠예 옛 귀족 혈통의 금지된 마법, 엘 푸에고 아덴트로의 힘으로 불길에 아무 상처도 입지 않은 채.

그러나 건물에서 심하게 기침하며 아마릴리스를 안고 나온 순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달라집니다. 눈동자 속에는 불꽃이 춤추고 불길 한가운데서 옷자락조차 그을리지 않은 모습으로 크리스와 마주친 순간… 마법을 들킨 이상 그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다름없어졌고, 결국 엘리아스는 그가 '미 브리요,' 나의 빛이라고 부르던 여자를 빼앗깁니다.

누구에게 분노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목숨을 빌미로 그녀를 비열하게 빼앗아간 아이젠놈을, 그 거래의 열쇠가 된 죽마고우를, 그를 위해 미래를 포기한 연인을, 아니면 연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던 자신을.

절망 끝에 그는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결론을 내립니다.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무작정 잡아죽이면서 평생 그의 삶을 막아선 이단심문회, 란쵸에 몽테뉴군이 습격한 밤 이후 그 이단심문회에 들어간 옛 친구, 그리고 아마릴리스의 빛을 가두려는 아이젠 용병.

이단심문회의 광신자들에게 그가 느끼는 고통을 되돌려줄 수 있다면, 아니면 최소한 아마릴리스에게 자유를 찾아줄 수라도 있다면 그가 이단심문회의 형장에 끌려가지 않고 살아남은 의미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목표를 위해 그는 그게 몽테뉴가 됐건 레기온이 됐건 누구하고든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세상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의 빛은 이제 곁에 없고, 그를 이끌어주는 것은 그의 영혼에 타는 어두운 불길뿐입니다. 그 화염이 그를 어떤 귀결로 이끌든 그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그 내면의 불길 외에는 붙들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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