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감

“아마릴리스가, 임신했다고?”

“예. 부인께 직접 여쭤보았습니다. 산파 말로는 3개월 정도 됐다고 하더군요.”

“에에…… 그래?”

“축하드립니다. 대장님.”

“……”

“대장님?”

그렇게 얼빠진 얼굴은 처음 봅니다. 이렌느의 놀리는 목소리를 듣고 요제프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난 1년의 결혼 생활. 처음 몇 달은 말 그대로 한 지붕 두 살림이었다. 둘이 얼굴을 마주 하는 시간은 저녁식사 시간 밖에 없었으며, 하루에 한 두 마디를 나누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할 정도였다.

둘의 결혼 생활에 대해 이렌느가 무어라고 할 때마다 요제프는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하며 쓴 웃음을 짓곤 하였다. 애초부터 애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결혼이었으니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서운하기는 했지만 이미 각오하고 있었고, 처음부터 체념한 일이었다.

그 때 둘 사이를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나선 것이 아르미체였다. 처음에는 아르미체와 아마릴리스 사이에 무슨 불순한 관계라도 있는가, 하는 엉뚱한 오해도 했지만 이렌느가 둘 사이를 보다못해 아르미체를 채근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 둘 사이의 관계는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둘 간의 대화가 늘어나고, 드디어 자신에게 웃음을 보여주고, 첫 동침이 이루어지고…… 아직도 서먹하고, 아직도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처음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털썩, 요제프는 벽난로 앞 푹신한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아버지가 된다, 라.”

“실감이 안 나십니까?”

“응.”

“부부가 사랑을 나눠 자식을 낳는다. 이것은 데오스의 진리입니다.”

“흥. 몇 년 전만 해도 코찔찔이 꼬마 아가씨였던 주제에 아는 척 하기는. 남편 사랑 끔찍한거 그만 자랑해라.”

“후후훗.”

이렌느는 부드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래.”

이렌느는 방에서 나가기 전, 잠시 멈추고 요제프를 바라보았다.

“대장님.”

“왜?”

“만약 제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남자애라면… 대장님의 이름을 따서 지어도 되겠습니까?”

“…‘바보’ 라든지 ‘얼간이’ 같은 말이 같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고맙습니다.”

이렌느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다.



요제프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몇 번이나 생각해도 여전히 어색한 일이었다.

20여년 전, 그는 빈 손으로 프라이부르크의 관문을 통과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은 오직 여동생의 원수를 죽이고 얻은 이 갑옷 뿐.

요제프는 그 곳에서 용병생활을 하고, 칼밥을 먹으며 돈을 모았다. 어쩌다보니 알량한 동정심, 혹은 공명심으로 전쟁난민 출신의 고아들을 모아 어중이 떠중이 용병단을 조직했고, 그들과 함께 사지를 거닐면서 흘린 피와 뿌린 피에 비례하는 부와 명성을 쌓았다.

많은 부하들이 오래 전에 죽었고, 어떤 이들은 은퇴하거나 독립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렌느처럼 충직하게 자신을 따르는 이들 역시 많았다. 그리고 그 수는 점차 늘어났다.

“그뿐 만이 아니지.”

그 외에도 부하들의 가족, 식솔, 친구, 사회적 인맥…… 오래 살다 보니 점점 여러 가지에 얽매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던 것이라도-

‘산파 말로는 3개월 정도 됐다고 하더군요.’

한 번 손에 들어와 버리면 잃는 것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누구든 가진 것이 많아질 수록, 조금만 방심해도 소중한 것을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각오하고 선택한 길이지만…

“너무 많아.”

요제프는 갑작스레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로가 물밀듯 밀려오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댓글

로키, %2008/%10/%09 %22:%Oct:

오.. 현실감이 느껴지는 심리묘사!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뭉클하게 와닿는 게 있네. 이렌느하고 요제프의 대화도 재밌으면서도 진솔하고. 특히 마지막 줄에서 제목의 '피로감'이 절절하게 와닿는 느낌.

 
오승한, %2008/%10/%11 %08:%Oct:

(에헴에헴) 하지만 내가 늘렸던 플레이 요소 면모점수를 줄이는 건 가슴아픈 일(..)

 
orches, %2008/%10/%11 %20:%Oct:

우와, 요제프. ;ㅅ; 이렌느와의 대화도 되게 감명깊게 보았어요.

 
오승한, %2008/%10/%13 %11:%Oct:

그러기에 훗날 비극이 더욱 애처로운거죠. 쯧쯧쯧…(비극의 제공자이기는 하지만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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