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릴리스

아마릴리스 아르시에네가. “책을 베개삼아 자라난” 학자 가문의 아가씨입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했고, 그녀가 공부하는 것을 썩 마음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가두어 둘 정도로 완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마릴리스는 정식으로 학문을 배운 바는 없지만, 집안에 넘쳐나는 서적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읽고, 드나드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한 교양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자라나면서, 그녀가 부친 이상의 재지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찬사가 널리 퍼져나갔고, 뒤 이어 다른 명성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습니다. '아르시에네가의 꽃' 이라 불리던 아마릴리스가 사교계에 발을 내딛은 그 첫날부터, 그녀의 곁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구혼자로서 따라붙었습니다.

그런 아마릴리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엘리아스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였습니다. 모두가 화려하게 차려입고, 즐겁게 대화하는 와중에 홀로 한 쪽 구석에 어색하게 서 있던 키가 큰 청년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쪽으로 첫 발을 내딛은 게 호기심이었는지, 어떠한 이끌림이었는지 그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면서 알게 된 그의 선한 품성과 자신이 갖지 못한 열정을 그가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몇 번을 만나면서, 배운 것 없이 무지해보이던 청년이 사실 꽤나 영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엘리아스를 선택했고, 그 뒤의 나날은 쭉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그 날 이전까지는.

잊혀지지 않는 날. 건물이 온통 화염으로 쌓이고, 출구조차 보이지 않던 그 날. 열기에 정신을 잃은 그 순간의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지만, 몸을 감싸는 익숙한 느낌과, 자신의 몸을 안아든 연인의 눈동자에 타오르던 불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의 열정이 그대로 타오르는 듯한 불꽃. '그랬구나. 당신은 마법사의 피를 타고난 거였어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안도하며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며칠 후에 생전 처음 보는 아이젠 귀족이 나타나, 연인의 “비밀”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청혼해 왔습니다. 잠시의 고민도 없이, 그녀는 청혼을 수락했습니다. 결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남편 요제프는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는 삶을 만들어 주었지만, 절대 그녀가 사람을 만나거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새장 안에 갇힌 새. 요제프는 자상했지만, 문화가 다르고 지적 수준이 다른 그와의 대화는 그녀에겐 지루한 일이었습니다.

몇 차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난 뒤, 남편은 말벗이 되어 줄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옛 구혼자 아르미체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그는 사제가 되어 있었고 풍부한 교양과 학식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엘리아스의 친척이자 벗이었지요.

아르미체가 전해 주는 바깥 소식에 의지하면서, 그녀가 정서적으로 아르미체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자유롭게 바깥 세상을 다닐 수 있고, 세상 소식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고, 자유롭게 여러 명사들과 학문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엘리아스를 만나러 갈 수도 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작은 동경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댓글

로키, %2008/%09/%26 %12:%Sep:

멋진 배경이군! 아르미체에 대한 동경의 이유도 공감이 가고. 아마냥의 완고하신 아버지가 엘리아스에게, 그리고 요제프에게 어떻게 반응했을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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