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청혼?”

한 때는, 그런 관심들이 기분좋게 느껴지던 날들도 있었고, 미사여구가 가득한 연서들을 밤새 읽어보며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던 소녀 시절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그녀에게는 연인이 있다. 처음에는 '아르시에네가의 꽃'이 '말몰이 촌놈' 과 이어질 리가 있겠느냐며 수근대던 사람들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잠잠해졌다. 아마릴리스가 아녜스에 시집가기로 된 것은 이제 주위에도 유명해진 일이라 그녀에게 청혼하는 사람조차 사라진 지 제법 되었다. 상황이 나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젠 인에게 호기심마저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가 느낀 감정은 짜증 섞인 지긋지긋함 뿐이었다.

무엇보다 청혼해온 시기가 좋지 않았다. 란쵸가 불타던 날, 엘리아스의 몸 안에 흐르는 마법사의 힘을 보았다. 며칠 뒤 연인은 “아르미체에게 들켰다.” 면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떠나가겠다고 말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절대, 절대로 자신과 얽혀서는 안 된다며… 그 날 이후 하룻밤도 편하게 잠든 적이 없거늘, 한가하게 청혼이라고? 얼굴도 모르는 요제프라는 남자에 대해 까닭 모를 적개심이 피어올랐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결코 까닭 모를 일이 아니었음을, 당시의 아마릴리스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편지를 그대로 돌려보내세요. 읽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가씨. 읽어 보지 않으시면 후회하실 거라고…”

아마릴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얼마나 무례한 자인가. 그러고보니 엘리아스가 가르쳐준 말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젠장” 이라던가 “빌어먹을” 같은 말들을 이런 상황에서 쓰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다. 물론, 유모가 나갈 경우의 일이다. 운이 나쁘게도 유모는 나가지 않고 있다. 작은 한숨이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 그러면 어디, 읽어나 보기로 할게요.”

아이젠 용병에 대한 평소 선입견과 달리 그 필체는 무척 유려했다. 다만, 매끄럽고 가느닿다 못해 살짝 떨리는 느낌까지 주는 서체였으니 썩 잘 된 글씨라고는 보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 가느다람조차, 굳세고 강인하다던 아이젠 인들에 대한 평소 선입견과 너무나 다른 낯설음.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필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엘리아스에 대한 걱정으로 골몰해 있는 그녀의 머리는 꽤나 둔해져 있었다.

아끼던 나무 칼로 겉봉을 뜯자 몇 차례 반듯하게 접힌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릴리스 양. 결혼해 주십시오.' 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된 그 편지는 그녀의 상상 이상으로 짧았고…

'엘 푸에고 아덴트로… 그 날 밤, 저는 란쵸에 있었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무거워서. 그녀의 손에서 흘러내려 버렸다.

댓글

로키, %2008/%09/%30 %21:%Sep:

아마냥 시점이다! >_< 아기자기한 심리 표현이 재미있네. 엘리아스에게 배운 욕을 떠올리는 대목에서는 풉 웃었던. 심각한 내용이지만 유머가 있고, 묘사도 섬세하네. 뱀프군은 고고한 아가씨 표현을 재밌게 잘하는 듯.

그리고 쉼표는 앞에 말이 바로 다음 말을 수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라서 몇몇 부분은 쉼표를 제거하는 게 더 매끄러울 것 같아. 예를 들어..

'그 날 이후, 하룻밤도 편하게 잠든 적이 없거늘, 한가하게 청혼이라고?' → '그 날 이후 하룻밤도 편하게 잠든 적이 없거늘, 한가하게 청혼이라고?'

하는 식. 여기서 '그 날 이후'는 '하룻밤도 편하게 잠든 적이 없거늘'을 수식하니까 그 사이의 쉼표는 빼는 게 낫지. 마찬가지로 '요제프라는 남자에 대해'는 '까닭 모를 적개심'에 이어지니까 쉼표를 없애는 게 낫고. 별 이유 없이 주어 뒤에 쉼표가 붙은 부분도 보이는군.

그리고 작은 반박! 엘 푸에고 아텐트로 → 아덴트로. 거는 토큰은 1임.

 
정석한, %2008/%10/%01 %08:%Oct:

그냥 조용히 수정하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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