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르 - 와일드 헌트

아침에 사람들이 테오르를 찾아서 데려왔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마치 너무 가까이 가기만 해도 그 끔찍한 운명이 옮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둘러서서 수근거렸다. 가끔 조용히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형을 보게 해주세요!”

둘러선 사람들의 원 바깥쪽에서 이제 막 변성기가 찾아온 소년의 목소리가 절규했다.

“베오르크! 안 된다. 보면 안 돼!”

친척들이 붙잡으려 했지만 슬픔과 경악으로 제정신이 아닌 소년은 그들을 뿌리치고 사람들을 마구 헤치며 그들이 둥글게 비워둔 공간으로 나왔다.

“형! ..어머니!”

소리내어 울지조차 못하고 아들의 주검을 하염없이 안고 있던 여인은 눈물 젖은 얼굴을 들었다. 화려한 숫사슴 뿔이 기괴하게 돋은 머리를 무릎에 받치고 있기는 불편했겠지만, 어머니는 치마에 구멍을 내고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뿔끝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소년은 비틀비틀 다가섰다.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를 쫓아온 친척 어른들은 차마 더 붙잡지는 못하고 망연히 지켜보았다.

어머니 곁에 선 소년은 한참동안 죽은 형을 내려보았다.

어제 숲으로 나갔을 때 소년의 형은 분명 옷을 입고 있었지만, 누군가 덮어준 망토가 미끄러지면서 맨어깨가 보였다. 망토 밑으로 뻣뻣하게 나온 맨발과 맨다리는 피와 흙투성이였다. 약간 파랗게 얼고 생채기투성이가 된 모습에는 벌거벗은 채 숲속을 달려야 했던 하룻밤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끔찍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사슴 뿔 밑의 얼굴… 시신의 입은 반쯤 벌어져 웃고 있었다. 기쁨이 아닌, 공포의 극한을 넘어 정신이 부서져버린 기묘한 환희에. 생전의 조용하고 강인하던 모습조차 생명과 함께 빼앗긴 채, 백치와 같은 웃음은 죽은 얼굴에 굳어져 산 사람의 기억에까지 지워지지 않는 각인을 남겼다.

“어째서…”

불안정한 변성기 목소리는 참혹한 고통에 끊어지고 흔들렸다.

“왜 형이…”

그러나 소년은 이미 답을 알았다. 먼발치에서 두렵게 쳐다보거나 집에서 내다보는 사람들도,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도 알고 있듯.

해가 지고 나서 숲에 있으면 안 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구든 듣는 말. 요정들이 와일드 헌트를 하는 밤이면, 마법으로 머리에 사슴뿔을 돋게 하고 벌거벗겨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요정의 사냥대에게 쫓길 거라고… 숲에서 길을 잃었던 소년의 형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경고의 이야기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요정 놈들이 이랬어.”

사람들이 흠칫하며 한 발짝씩 멀어졌고, 어머니는 이미 죽은 아들을 보호하기라도 할 듯 꼭 끌어안았다.

“요정 놈들이 형을 죽였어…”

“이 녀석!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냐!”

소년의 삼촌은 두려움에서 태어난 분노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삼촌도 알잖아요? 다들 알잖아! 요정놈들이 형을 이꼴로 만들었어요! 아무 잘못도 없이 형이 죽었는데 다들 요정이 겁나서..!”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고 소년은 비틀거렸다.

“소리내서 할 이야기가 있고 못할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소년의 삼촌은 돌처럼 굳은 얼굴로 말했다.

“형을 장사지내고 어머니를 모실 생각을 해야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분노하다가 너까지 목숨을 잃을 셈이냐?”

그 말을 끝으로 삼촌은 다른 친척 어른들과 함께 죽은 청년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걸음을 옮겼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집으로 들어가 버려서 주변은 한산했다.

“인간의 힘…”

소년은 친척들이 옮겨가는 형의 시신에 한사코 등을 돌린 채 손등으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손등의 선명한 붉은 얼룩을 한참 쳐다보았다. 인간의 피, 그 죽음과 분노의 빛을.

소년은 그 분노를 잊지 않을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가족 부양의 책임을 맡은 그는 마치 지쳐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고된 노동에 힘을 쏟으면서 아픔을 소중한 보물처럼 하루하루 키워가고 다듬을 것이다. 계속해서 요정을 저주하는 그에게 내릴 요정의 복수가 두려워 사람들이 그를 피해도, 깊어만 가는 고독 속에서 그의 결의에는 예리한 날이 서갈 것이다.

흉작이 들고 송아지가 죽어서 태어난 어느 해, 마을 사람들은 이건 모두 요정을 저주하는 남자에 대한 보복이라며 마침내 그를 몰아낼 것이다. 그리고 일찍 늙어버린 어머니를 친척들에게 맡기고 그는 미련없이 떠나갈 것이다. 베오르크라는 이름은 시간의 흐름에 묻혀 사라지도록 내버려둔 채.



제단 위에 희미하게 타는 불길 외에 방안은 칠흑처럼 어둡다. 높은 천장은 어둠에 묻혀 까마득히 머리 위로 사라져가고, 둥글게 둘러선 모습들은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인지 아니면 그림자의 편린인지 알 수 없다. 제단에 피운 불의 흔들리는 빛 속에 제단을 등지고 선 검은 로브 입은 키 큰 인물과 그 앞에 무릎 꿇은 사람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다.

“이 땅에 어둠이 내렸으니…”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벽과 천장에서 울리듯 장중하다.

“그대는 그 빛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나를 성화(聖火)의 제물로 태워 데오스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무릎 꿇은 서원자의 목소리는 낮지만 뚜렷하다.

“인간은 사슬에 묶였나니…”

어둠 속에서 쇠사슬이 철컹거린다.

“그대는 자유로울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신의 자비 안에서 자유하리니 나를 묶을 사슬이 없으리다.”

“그렇다면 데오스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일어서라!”

제단 앞에 선 사내가 손짓하자 다시 쇠가 철컹거린다. 무릎 꿇은 서원자가 천천히 일어서자 그의 손목을 바닥에 고정하고 있던 쇠사슬이 힘없이 풀려 떨어져내린다.

“이 땅에 빛과 자유가 될 한철(寒鐵)의 기사, 자비에르 형제여.”

제단 위의 불길이 갑자기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확 타오르면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찔러오지만, 사슬에서 벗어나 일어선 젊은 수도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 빛을 홀린 듯 들여다본다.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는 확고한 눈빛 속에는 성화의 불길이 붉게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