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자비에르,
인간은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다.
하지만 믿어라,
너희는 새보다 더 높은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다.

자비에르,
인간은 물고기처럼 바다에서 살 수 없다.
하지만 믿어라,
너희는 물고기들도 감히 가지 못하는 심연의 바다 속을 정복할 것이다.


남자는 저잣거리를 둘러보았다.
활기찬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모습,
어제 사냥의 계절이 막 시작되었다 한다.
요정들이 활보하는 시간이다.

이미 해가 서편으로 넘어가는 지금,
긴 뿔고둥 소리와 함께 숲 저편에서 아름답고 불길한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요정들이 그들의 궁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문을 걸어잠그고 밤새 공포에 떠는 일 뿐.

남자는 사거리 한복판에 섰다.
추레한 땅딸보를 주의깊게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역시 무척 망설이는 듯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자꾸 입을 다문다.


나의 주, 하늘의 왕이시여.
저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일 뿐입니다.
제 키는 작고 외모는 볼품 없습니다.
제 혀는 짧고 목소리는 우스꽝스럽습니다.

위대한 용사를 부르십시오.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영웅을 선택하십시오.
당신이 제 대신 선택한 이의 밑에 들어가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그의 신을 닦겠나이다.

네 말대로이다, 자비에르.
너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너야말로 용사 중의 용사, 영웅 중의 영웅.
나, 데오스가 사랑하는 가장 높은 이로다.

하지만 왕이시여,
이미 백 번을 외치고 천 번을 부르짖었나이다.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과 욕설 뿐,
저들의 눈과 귀는 막혔고, 마음은 단단히 얼어 붙었나이다.

네 말대로이다, 자비에르.
저들은 두려움으로 눈과 귀를 가리고 체념으로 마음을 꽁꽁 얼렸다.
그러니 천번을 외치고 만번을 부르짖어라.
저들에게 빛이 되고 불이 되어라.

왜 저 입니까.
왜 저를 선택하셨습니까.
시련과 역경이 가득한 제 인생에 왜 고통을 더하시는 겁니까.
왜 하필이면 이와같은 큰 일을 제가 해야 하는 겁니까.

당신의 예언, 두렵고 떨립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비전, 너무나 끔찍해 몸서리가 쳐집니다.
차라리 지금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당신 곁에서 편안하게 쉬게 해 주십시오.

승리를 위해서는 수십만이 피를 흘릴 것이고.
승리를 한 후에는 수백만이 서로 물고 뜯을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은 왜곡되고 뜯어 고쳐져
악인들의 궤변과 자기만족에 쓰일 것입니다.

저는 불완전한 인간, 어리석은 자입니다.
당신의 뜻을 완전히 이루기에는 너무나 모자랍니다.
오소서, 직접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에게 완전한 세계를 내려주소서.

네 말대로이다, 자비에르.
승리는 힘들고, 승리 후는 더욱 힘들 것이다.
아침의 친구는 저녁의 원수가 될 것이고,
“정의”와 “진리”라는 말은 “불의”와 “거짓”을 위해 쓰이리라.

그러기에 더더욱 너희는 자신의 손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러기에 더더욱 너희는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쟁취해야 한다.
알을 스스로 깨지 않은 새는 날지 못하고
고치를 스스로 벗지 못한 나비는 살아남지 못하기에.

좌절을 맛본 자만이 참된 승리의 기쁨을 알게 되고.
길을 찾아 헤메는 자만이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강철은 수천번을 두들겨 더욱 강해지고
이슬은 수백년을 떨어져 바위를 뚫는다.

인간이 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가 믿고 바라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나, 데오스가 부여한 가장 큰 선물.
그 어떠한 이들도 빼앗을 수 없는 보배.

그러니 믿어라, 자비에르.
너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
네 아들의 죽음 앞에서 맹세한 그 다짐,
나, 데오스에게 털어놓은 소망을 이룰 수 있다.

믿어라, 너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숲과 어둠과 이방인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산과 들판에는 괴물이 살지 않을 것이고
주문도, 저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믿어라, 너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다.
모든 이가 자유로워 질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부서질 것이고,
사람들은 도표없는 미래를 걷게 될 것이다.

믿어라, 너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다.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마침내 그 누구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기뻐하는 날,
모든 이가 하나되어 가장 아름다운 합창을 부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야말로 나, 데오스, 이제와 항상 영원히 너희 곁에 머물지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려움은 가셨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믿음 뿐.
굳게 닫혀있던 입이 활짝 열리고, 희미하던 목소리가 장중하게 울려 퍼진다.

“새 세상이 오고 있소! 자유로운 인간의 시대가 오고 있소……”


믿어라.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을.

댓글

로키, %2009/%10/%10 %16:%Oct: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믿음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감동적으로 보여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