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트족 기원 설화

물의 여신 반듀아와 불의 여신 로누아는 자매 사이였다. 어느 날 두 여신은 인간 세계를 내다 보다가 사냥 중에 강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케르눈노스라는 인간 청년을 보았고, 동시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두 여신은 인간 처녀로 화해 청년의 앞에 나타났다. 반듀아와 로누아 모두 아름다웠지만, 케르눈노스는 괄괄하고 성질 급한 로누아보다 온화하고 착한 반듀아에게 더 마음이 갔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반듀아였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로누아는 두 연인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떠났다.

홀로 신의 궁전, 시하할나으로 돌아온 로누아는 케르눈노스를 잊지 못해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듀아는 임수르의 부름을 받고 그녀의 연인 곁을 잠시 떠나게 되었다. 케르눈노스를 그리워하며 열병에 걸리고 만 로누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둠을 틈타 청년의 집을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로누아의 목소리를 그의 연인의 목소리로 착각한 케르눈노스는 문을 열어주었고, 로누아는 놀란 청년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러나 청년의 연약한 육체는 불의 여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품 안에서 검은 재가 되고 말았다.

로누아는 죄책감과 슬픔 때문에 미쳐버렸다.

세상은 화염 속에 잠겼다. 구름이 불타고, 유황과 불의 비가 내렸으며, 강과 호수는 끓어오르고, 산은 붉게 달궈진 철처럼 녹아내렸다.

반듀아는 임수르가 맡긴 임무를 마치고 케르눈노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연인은 한 줌 재가 되어 있었으며, 세상은 미친 불길 속에서 타고 있었다. 반듀아는 사슬로 로누아를 묶어 세상에서 가장 큰 산 아래에 가두었지만, 로누아의 불길은 끝내 잠재우지 못하고 스스로 꺼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비탄에 빠진 반듀아는 시하할나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 때, 바닷가에서 그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두 연인이 불길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에겔이었고, 여자의 이름은 사누였다. 서로를 안고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보는 순간 반듀아의 마음에 측은지심이 생겼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두 사람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그것처럼 변했고, 손가락 사이에는 물갈퀴가 돋아났으며, 물 속에서도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두 연인은 여신의 자비에 감사하며 바다 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불의 시대'가 끝났다. 하늘에서는 불덩이 대신 차가운 비가 내려 불길을 잠재우고 땅을 식혔다. 검게 탄 대지 위에는 다시 생명이 돌아왔다. 풀과 나무는 다시 푸르게 돋아났고, 동물들은 새끼를 쳐서 수를 불려나갔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 인간이 없었다.

반듀아 여신이 바다 속에서 살고 있던 에겔과 사누의 후손들을 이끌고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해변에 이르르자 마법이 풀려 하반신은 다시 다리로 변했으며, 손에서는 물갈퀴가 사라졌다. 그들 중 누구는 북쪽으로 가고, 누구는 남쪽으로 가며, 누구는 동쪽으로 가고, 누구는 서쪽으로 가서 거취를 정하고 혼인하여 자식을 낳으니, 세대가 지날 수록 수가 수 배로 늘어 해변의 모래만큼이나 많아졌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다시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