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마법사

대마법사 마그누스칼라인 듀리온을 만나기 전 북쪽 아킬라니 지방의 한 탑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칼라인 듀리온이 처음 마그누스를 찾아왔던 무렵 그는 탑의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주변 지역에서 한창 이름을 얻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의 탑에 관해 그런 것처럼 마그누스의 탑 주변 마을에도 어린아이들을 잡아다 인신공양하고 그 힘으로 마법을 부렸던 악한 마법사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마법사와 요정적인 존재들을 향해 옛날 사람들이 품고 있던 미신적인 공포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그누스라는 한 독특한 인간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못합니다. 마법사라는 망토 아래 가려져 있는 마그누스를 찾기 위해서는 덜 흔하고 그 지방만의 특색을 띄고 있어 눈여겨볼만한 가치가 있는 설화들을 발굴해내야 합니다.

요정들에게 납치되어 간 아이를 찾아 모든 산과 들판을 헤매다 결국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탑의 마법사를 찾아갔던 한 아버지에 관한 설화가 그 일례입니다.

한 번 요정들의 숲으로 사라진 사람을 다시 찾아오는 것은 그 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법사에게 청했고 마법사는 그가 일년 내에 달이슬꽃을 따올 수 있다면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했다고 합니다. 달이슬꽃은 까마득한 옛날 멸종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꽃으로 그 꽃술에 닿는 것만으로도 어떤 상처라도 낫게 할 수 있지만 요정들 또한 천 년 동안 그것을 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달이슬꽃을 따오는 것은 요정들의 숲에서 사람을 구해오는 것 이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던 것이지요. 일년 내내 아킬라니 전역을 방황했지만 결국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마법사에게 돌아갔을 때 마그누스는 어떤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단지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만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도 더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영영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그의 아이였던 것입니다.

마그누스의 탑 근방 한 마을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이 설화로부터 우리는 마법사 마그누스가 인간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요정적인 면모를 갖고 있던 것만큼이나 완전한 요정에게서라면 결코 찾아볼 수 없었을 인간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던 한 명의 사람이 아니었을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자신을 찾아온 칼라인 듀리온을 따라 암흑 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바깥 세상에 출사하기로 합니다. 탑을 떠날 때 그는 자신의 탑의 문을 거대한 자물쇠로 잠그면서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고 거대한 마법을 부리며 세상을 주유하면서 수많은 상실과 승리, 패배을 경험한 끝에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탑으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옛날 마법사가 자신의 거처를 정했던 북쪽 지방 이 추운 아킬라니의 땅에 서서 이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된 마그누스의 탑 위로 떠가는 구름 낀 달을 올려다보며, 산과 물은 변한 것이 없는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말을 그야말로 새삼 실감하면서 저는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의 죽음과 삶을 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를 한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동쪽, 흐르는 모래 사막으로 향하던 타이샨 출신 정치 망명객 이다연(李茶淵)1)마그누스의 백탑 아래에서 눈을 피하면서 탑 아래 묻어두고 간 시를 이후 이다연 연구자들이 발굴, 보존해 둔 것입니다.

시는 꽃이 있다 진 자리, 겨울이 되어 흰 눈이 내리니 꽃이 피었던 탑끝에 날려서 붉게 꽃모양으로 녹는 심상을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은 꽃이 없어도 그 자리에 꽃이 피었던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눈은 꽃을 지게 하는 존재지만 그 눈마저도 꽃이 피었던 사실을 덮지 못하기 때문에, 꽃이 지금 없다고 해도 꽃이 피었었다는 것을 지나는 이들도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발견 당시 이 글은 도기파편에 농묵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이로써 당시 문인들의 필기구 사용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소박하면서도 낭만적인 기록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눈 아래 발자욱이 탑 아래 머물다

내린 눈 탑끝에서 머무는 아쉬움은

봄이 진 자국마다 흰 눈이 붉게 녹아

여기 핀 봄으로 낙화를 헤아리니

꽃 하나 이미 진들 피지 않은 꽃이랴.

1) 이다연은 이 외에도 몇 편의 시가 더 전하며, 동쪽 대사막을 지나던 중 모래에 함유된 독먼지로 인해 염증으로 사망한다.

댓글

_엔, %2007/%10/%26 %23:%Oct:

시와 시 해설은 필자의 친구 이다연 군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것입니다.

 
로키, %2007/%10/%26 %23:%Oct:

옛날이야기처럼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네요. 시도 예쁘고요. 칼라인과는 어려서부터 친구였다는 미스틱님의 설정하고는 충돌하니까 반박이 들어올지도요! (..)

 
_엔, %2007/%10/%26 %23:%Oct:

마그누스는 어리지 않고 칼라인'만'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고 하면 어떻게 넘어가지지 않을까요?;; (반짝이는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