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통의 편지

(우연한 만남 보기)

(크리소스토무스 수사의 편지 보기)

수사님께,

그 만남 이후 이렇게 서신까지 보내주시다니 그 사려에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수사님의 깊은 신심과 신념의 힘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처럼 연구실에만 파묻혀 산 학자는 데오스의 섭리와 영광을 잊기 쉽지요. 도서관에서 수사님과 마주친 덕에 다시 한 번 초월적인 것에 마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서로 의견과 분야가 다른 이들의 교류가 가져오는 생각의 풍요는 곧 데오스의 은혜라고 어찌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수사님께서 편지에서 말씀하신 성인상의 비유는 분명히 아름답고 일견 설득력이 강합니다. 또한 지극히 위험하며, 역사학에는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보잘것없는 노학의 생각입니다. 비록 역사관이 역사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여도 과거의 사료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무(無)에서부터 유(有)를 창조하는 조각 과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여기에서부터 이미 조각상 비유는 그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으로 수사님께서 말씀하신 통일된 이미지 혹은 계획을 역사학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깁니다. 모두가 한 가지 동일한 설계를 염두에 두고 역사 연구에 착수하면 그 설계에 어긋나는 사료는 버려지거나 그 해석을 설계도에 맞추려고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결국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을 연구하는 이 학문의 근본적인 과업은 잊혀지고 남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설계에 어떻게든 맞추려는 작업뿐입니다. 이러한 학문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제가 평생을 바친 역사학은 그러한 작업이 아닙니다, 수사님.

어쩌면 수사님은 그런 뜻이 아니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비유로 논증하는 어려움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수사님은 데오스 아래 한 나라를 만들려는 민중의 염원이라는 설계도에 동참하지 않은 인물이나 세력의 기여는 우노스 정교회와 그 신도들의 기여만큼 중요하지 않거나, 그들의 기여는 오히려 건국에 해악을 미쳤다는 의도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의 대화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우리 교회의 위대한 업적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교도나 이방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기여를 평가절하하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향과 원인을 자칫 무시하는 편협함을 경계할 따름입니다.

다양한 신념과 출신의 세력이나 인물의 기여를 인정한다고 데오스의 위대한 섭리에, 듀리온을 세운 신념의 영광에 추호라도 그늘을 드리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종달새의 노래가 아름답다고 말한다고 그것이 어찌 꾀꼬리의 노랫소리를 평가절하하는 의미가 되겠습니까. 학문적 동지로서 우리가 밝혀내는 역사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든, 우리의 의견이 어떻게 다르든 결과적으로는 데오스의 더 큰 영광을 드러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저 데오스께서는 진리의 수호자이시며 참된 길을 밝히는 광휘이시니. — 빛의 서 3권 7장 2절

마티아스 펜너 드림.



펜을 잉크병에 꽂고 펜너 교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사제라는 자들은 어째서 데오스의 영광이 하늘의 태양이 아니라 불면 꺼지는 촛불인양 아주 작은 도전에도, 아니 도전조차 아닌 주장에도 파르르 떠는 것일까. 건국은 우노스 정교회와 데오스 신앙 외에도 많은 세력과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어떻게 데오스의 영광에 누가 될 수 있을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의 수호하는 것은 데오스의 영광이 아닌 교회의 권력이라서 그렇겠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데오스는 믿었지만,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적 권력인 교회는 또 다른 문제였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 곧 데우스에 대한 공격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다니 그 얼마나 편리한 방벽인가. 그 개념적 분리를 이루지 못하는 한 학문이든 정치든 진정한 발전은 요원하리라.

펜너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서 크리소스토무스 수사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가 정말로 생각해야 할 존재는 그가 내치고 구석에 몰아넣은 젊은 제자. '일곱 가지 선물'에 드러난 옛 제자의 열정과 재능이 벅찬 기쁨이었던 만큼이나 '벨가스트의 진실'의 공격적 논조는 노교수를 불안하게 했다. 피디아스의 모욕이나 미움이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학계에 몸담아온 반평생, 이미 조롱에 흔들릴 나이는 아니었으며, 피디아스가 더 심한 말을 해도 그에게는 불평할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피디아스가 그런 감정을 학술 기사에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학자에게 필수적인 감정적 객관성을 잃고 연구 기사가 개인 비방으로 전락한다면 피디아스의 학문적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역시 피디아스를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은퇴를 서둘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미움의 표적이 없어지면 피디아스가 객관성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단정하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라면 단기간 내에 나온 두 글의 논조 차이였다. '일곱 가지 선물'에서는 마티아스가 기억하는 젊고 열정적인 학자 그대로였던 피디아스가 '벨가스트의 진실'에서는 갑자기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모순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그가 아는 피디아스답지도 않았고 '일곱 가지 선물'의 정연한 논리하고도 전혀 달랐다. 마치…

'명령받은 것처럼?'

설마… 지나친 생각이었다. 어쨌든 피디아스가 지금 누구의 후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인지, 정말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발견한 것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후회하고 괴로워하려면 끝이 없겠지만 그것은 그에게도 피디아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어떻게 하면 그가 피디아스에게 한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그가 은퇴하고 비는 자리를 피디아스가 잇는 것이겠지만, 바로 추천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재능은 확연했지만 피디아스는 아직 젊은 학자였으므로 그가 추천한다고 바로 대학에서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바로 교수 자리까지는 아니어도 연구 기금을 받아서 좀 더 안정적인 자리를 만들어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피디아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필요했고, 추천을 하더라도 그 추천이 마티아스에게서 나온다면 아직 분노가 식지 않은 기색이 역력한 피디아스는 분노와 자존심 때문에 거절할지도 몰랐다.

결국 그는 피디아스의 학문적 미래에 이중의 장애를 만든 셈이었다. 그의 출신과 배경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자리에 추천을 받지 못한 점, 그리고 마티아스에게서는 도움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맹목적인 적개심을.

'나의 죄다…'

펜너 교수는 자꾸 움츠러들려는 몸을 억지로 펴며 당당하게 앉았다. 그에게는 자기연민과 회한에 허우적거릴 시간도, 자격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그가 한 잘못을 만회할 방법이 있다면, 피디아스의 장래를 도울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길뿐. 다시 펜을 들고 종이와 압지를 끌어다가 그는 편지를 또 하나 쓰기 시작했다.



레어덴 교수님께,

지난번 저와 나누신 대화에서 하신 제안을 생각해보았습니다만, 글렌포드 역사학 연구 기금 수혜자를 연구 기사 대회로 결정하자는 말씀은 아무리 생각해도 찬성할 수 없습니다. 글렌포드 기금 수여와 같은 중요한 결정은 교수들의 추천과 의논으로 내리는 것이 우리 대학의 유구한 전통일진대, 공개 경쟁으로 결정하자는 발상은 대학의 전통을 부인하는…



글을 써내리며 노교수는 웃음을 지었다. 레어덴 교수는 교회와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사제 출신 교수로, 마티아스에 대한 미움으로 치면 피디아스와 각축을 벌일 인물이었다. 몇 년 전 펜너 교수가 에우세비오 교부의 '건국기'를 대학 역사학 교재로 사용 중지할 것을 주장했을 때부터 펜너 교수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노골적이고 격렬했다. 레어덴이 마티아스를 해임해야 한다고 우길 때마다 은화를 1페니씩 받았더라면 지금쯤 갑부가 되었으리라.

당연히 레어덴이 학술 기사 대회를 통해 글렌포드 연구 기금을 수여하자는 제안 따위를 한 적은 없었다. 그 양반이 평생 한 번이라도 합리적이거나 창의적인 주장을 한 적이 있는지 마티아스는 심각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마티아스보다도 열 살 이상 많은 레어덴은 가끔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만큼 마티아스의 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레어덴에게 중요한 사실은 그가 뭔가 새로운 제안을 했고 마티아스가 그 제안에 반대했다는 점. 마티아스가 한 제안이었더라면 레어덴은 발벗고 나서 반대했겠지만, 레어덴이 한 제안이며 마티아스가 반대했다고 믿는 이상 레어덴은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이 대회를 추진하리라. 합리적이고 참신한 생각인 만큼 다른 교수들은 레어덴 편을 들 테고, 레어덴의 제안이므로 대학에 (마티아스의 소견으로는)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에서도 찬성하겠지. 크리소스토무스 수사와의 사건 이후로 아마 더욱… 물론 마티아스는 끝까지, 그리고 무익하게 반대할 생각이었다. 편지에 서명하는 그의 눈이 웃음기로 반짝였다.

그리고 피디아스는…

'부탁이다…'

어느새 방안은 어두웠다. 펜너 교수는 램프에 불을 밝히고 창밖의 저녁 하늘을 내다보았다.

'나에 대한 미움이 진짜라면 그 미움으로 힘을 내다오.'

그가 이 대회 건을 반대하는 것을 알고 피디아스가 늙은 위선자에게 한 방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대회에서 우승하기를 펜너 교수는 간절히 바랐다. 피디아스처럼 인맥도 돈도 없이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젊은 인재의 등용을 마티아스가 저지하려고 한다고, 아니 어쩌면 피디아스 자신의 장래를 막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기를, 그래서 더 질 수 없다고 열정을 불태우기를, 그리고 결국 만인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좋은 기회를 손에 넣기를.

'어려움 앞에서 너의 재능과 순수를 소모하지는 말아다오… 절망이나 냉소에 빠져 내 죄를 더 키우지는 말아다오.'

어둠 속에 작지만 밝게 타는 램프빛 속에서 마티아스 펜너 교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편협했던 늙은 교수의 잘못과 회한도 인정하고 용서하실 그의 자애로운 데오스에게 간구하는 마음으로.

댓글

로키, %2007/%10/%24 %08:%Oct:

크림소스 수사의 편지 봤을 때부터 답신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게 피디아스 쪽으로까지 이어졌군요. 역사학계의 대마왕답게 적도 많은 마티아스 옹이었습.. 펜너 교수가 꾸미는 계략의 원리는 반(反)심리학 (reverse psychology)라고도 합니다. 바라는 바에 스스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해서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남이 (이 경우 레어덴과 피디아스) 움직이게 하는 거죠. 분쟁해결 분석 용어로는 '미운 놈이 하는 짓은 다 미운' 반사적 평가절하 (reflexive devaluation) 현상이기도 합니다.

기금 대회 건이 재미있어 보이는 분은 일기에 사용하시길. 펜너 옹은 피디아스가 우승해서 기금을 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피디아스 고생 끝(?)이 되기에는 너무 이르다면 우승하고서도 출신을 밝히겠다는 협박에 져서 결국 상을 거부했다거나 하는 스토리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피디아스 못지 않게 이 기금이 필요한 릴리가 다크호스로 이겨도 재밌을 것 같고요. 그 외에 복스 양이라든가 학계의 주류가 아닌 할루크 말덴씨도 재밌겠죠.

 
정석한, %2007/%10/%24 %12:%Oct: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만큼, 에서 혀 깨물 뻔 했습니다. ^^;;

전체적으로 노교수의 학문적 신념이나, 제자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나는 진지한 글임에도 한 줄의 유머는 빼놓지 않으셨군요!

 
_엔, %2007/%10/%25 %03:%Oct:

로키 님은 중후한 인물들을 창작하셔서 어떻게 다루실까 궁금했는데, 정말 노교수의 먹내가 묻어나는 것 같은 글들을 쓰시는군요. 어른스럽… 아니 어른스러운 걸 넘어서서 중후해서 참 좋아요. 펜너 옹의 반심리학 감동적이고요, 피디아스 군에 대한 사랑이 마구마구 느껴지네요. (저도 사랑해요!) 레어덴에 관한 부분에서는 만만찮은 면모와 동시에 유머가 느껴져서 막 웃었습니다.

기금은 피디아스가 받았으면… ;ㅁ;

 
백광열, %2007/%10/%25 %22:%Oct:

역시 폭풍의 중심에 있는 마티아스 펜너의 일기는 흥미진진하네요. 피디아스 바르삭과 더불어 가장 격렬한 내적 갈등을 안고 계시니… ^^; 피디아스를 응원하는 펜너 교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