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가스트 최후의 날

최근 발표된 펜너 교수듀리온 국왕, 나의 동생에게 에서는 후에 벨가스트 반란으로 알려진 사건의 전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칼라인 3세 전하는 왕립도서관을 건축하고, 국가의 기틀을 잡은 명군이지만 후대에 길이 남을 몇 가지 실책도 저지르셨는데, 돈울프 공의 제거1) 나, 이 벨가스트 정벌이 그렇습니다.

실제로 벨가스트 왕국이 칼라인 2세, 마나 전하를 시해하였는지의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외교 사절이 공격받게 내버려 둔 책임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외교 사절이 일국의 국왕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마나 전하가 공격받은 지점은 왕국 해역인 유테리아 앞바다로, 일방적으로 벨가스트에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하겠습니다. 부친을 잃은 칼라인 3세 전하가 분개하여 벨가스트를 정벌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은 실로 모두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듀리온 왕국군은 아스탈키안 그웨나라르크를 총대장으로 하는 4만의 병력으로 벨가스트를 침공하는 한편, 바르바리고 제독이 다시 3만의 해군으로 벨가스트를 공격하게 됩니다. 많은 중신들이 의문을 표한 이러한 수륙 양면의 정책은, 칼라인 3세 전하의 전략적 비범함과 예측력을 증명한 셈이 됩니다. 해상 민족인 반트인에게 있어서, 육상에서의 포위보다 해상 봉쇄가 더욱 효과적이었음이 후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는 칼라인 3세 전하의 최대의 실책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신 아스탈키안 그웨나라르크, 존귀하신 국왕 전하께 고합니다.

신이 대군을 이끌고 벨가스트에 진군하는 동안 단 한 사람의 벨가스트 병사도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신이 듣기에 벨가스트의 브란은, “싸움과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이대로 응전하면 내가 같은 어머니의 태를 빌린 동생을 죽인 것을 시인하는 셈이니 그것만은 결단코 받을 수 없다.” 라 하여 벨가스트의 군민을 수도로 집결하여 피난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합니다.

이곳은 오랜 세월 그들의 땅으로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모국을 버리고 일시 다른곳으로 피난을 하면서까지 전투를 회피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선왕께서 시해되신 것은 불행한 일로, 신 또한 그 일을 상기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주위를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허나 그 죄를 벨가스트에 묻는 것은 필경 애매한 죄목이라 사료됩니다.

이에 신은 일시 진군을 중지하고, 전하의 다음 장령을 기다립니다. 부디 밝게 살피시길 소망합니다.

장계에서 드러나듯, 브란은 오해가 풀릴 때까지 결전을 회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벨가스트를 일시적으로 비울 결심까지 갖춥니다.

그 점에서, 적어도 브란은 칼라인 2세 전하의 시해 사건에 무관하며 그 스스로도 뒤가 캥기는 구석이 없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스탈키안 공 역시 진군을 중단하고 새로운 장령을 기다리지만, 돌아온 것은 “즉각 진군 재개” 의 명령 뿐이었습니다.

한편 칼라인 3세 전하는 다시 바르바리고 제독에게 영을 내려, 해안을 봉쇄하고 단 한 척의 배도 드나들게 하지 말라는 영을 내립니다. 이후 칼라인 3세 전하는 벨가스트에 표문을 보내게 됩니다.

선왕께서 관대하게 대역 불충의 죄를 이해하시어, 끝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소망하시었는데, 너희 간악한 해적의 무리들은 비열하게도 선왕 전하를 습격하여 시해하고, 지금에 와서까지 발뺌을 하니 실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무리들이다.

너희가 진정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반역의 수괴 브란과, 그 후견인 다닐을 스스로 포박하여 왕도에 보내 죄를 청해야 할 것인데도 그대로 벨가스트에 눌러앉아 어지러운 소리로 면죄하려 들다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과인은 선왕 전하의 유지를 존중하여 그대들이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벌을 청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이미 주었으나 그대들은 조금의 반성의 기색도 보이지 아니하는도다. 이에 그대들에게 남은 길은 오직 저승에서 선왕 전하께 사죄하는 것 뿐이다.

지금에 와서는 어떠한 강화 조건도 수락하지 아니한다. 반역의 도배들이 항복하는 것도 용납치 아니한다. 저 멀리 동방 타이샨에는,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하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지금 과인의 심정이 바로 그러하다. 벨가스트의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남겨놓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노라.

실로 굴육적으로 보일 수 있는, 군민 모두가 땅을 버리고 해로로 피난한다는 정책은 벨가스트가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제스쳐였습니다

. 그런데 칼라인 3세 전하는 그 제스쳐를 거부할 뿐 아니라, 해로를 봉쇄하고 “항복도 받지 않는다.” 는 강경한 수를 쓰게 됩니다. 이에 돈울프 공은 크게 탄식하여, “일시적 혈기로 대세를 그르쳤구나. 구석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거늘, 어찌 저리 독하게 몰아세운단 말인가!” 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 말처럼, 궁지에 몰린 벨가스트의 저항은 무서웠고, 벨가스트는 이후 7년간 결사적으로 항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도 화해와 강화를 원한 무리는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돈울프공은 “우리가 군대를 보내어 벨가스트의 땅을 절반 이상 점령하였고 바다에서는 여전히 봉쇄를 유지하고 있으니 반역을 꾀하는 다른 무리들도 뜨끔하여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전쟁을 하루 지속할수록 국가의 국력이 탕진되는 법이니 이제 적절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음이 상책이다.” 고 하여, 육군 사령관이던 아스탈키안 그웨나라르크를 귀환시켜, 외무 대신으로 삼아 벨가스트와의 교섭을 시도하게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무용을 자랑하였던 아스탈키안 공2)은 우수한 지휘관으로 벨가스트의 게릴라 전법을 격퇴하며 벨가스트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한편, 과도한 살육과 약탈을 피해 벨가스트인에게 온정을 베풀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에 반감을 품은 칼라인 3세 전하는 아스탈키안 공을 경질하려는 움직임3)을 보이기도 하지만 실패하기에 이릅니다.

지루한 소모전과 외교적 협상이 오간 지 7년이 지난 해, 벨가스트 전국은 크게 반전하게 됩니다. 칼라인 3세 전하께서 돈울프 공을 숙청한 것입니다. 온건파였던 돈울프 공의 제거는 전국을 크게 바꾸었으니, 다시 칼라인 3세 전하는 총 공격을 개시합니다.

이에 벨가스트의 브란은 군세를 몰아 벨가스트 앞바다로 향합니다. 육상에서는 병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으나, 해상에서는 해볼만 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해상 봉쇄를 돌파하면, 해상 민족인 벨가스트인은 다시 근처의 연안 지역으로 계속 거점을 옮기면서 항전할 수 있고, 절대로 패하지 않는다는 계산 역시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저 제국의 안드레이 도리아 함대를 격파한 이래 벨가스트 해군은 줄곧 해상의 왕자였고, 벨가스트인은 모두가 우수한 전사이자, 유능한 선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듀리온 왕국 해군은 총 병력 3만, 그 함대는 총 55척이었습니다. 이중 주목할 것은 도리안 갤리어스 2척으로, 넓은 선폭과 두터운 선체, 그리고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공성용의 대포를 장착한, “움직이는 해상 요새” 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며 그 진가를 입증한 도리안 갤리어스, 빅토리 호와 트리니다드 호의 두 척은 향후 듀리온 왕국 해군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에 맞서는 벨가스트 해군은 용선 88척. 브리간틴 17척, 갤리어스 2척으로 총 107척의 전함4) 으로 맞섰습니다. 기록의 부재로 벨가스트 해군의 병력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배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벨가스트 해군 병력은 약 4만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추정은 가능합니다. 다음의 사료는 전투에 앞선, 듀리온 해군 총사령관, 바르바리고 제독의 항해일지입니다.

다닐 마나그.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루스. 지금까지의 해전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살아 있는 해상전의 백과사전.

그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인의 영광이라 하겠지만, 한편 내 어깨에 왕국의 미래가 걸렸다고 생각하니 실로 두려운 기분을 감출 길이 없다.

상대는 아군보다 병력이 많고, 또 해전에 익숙한 데다가, 배의 기동성도 우수하다. 오랜 세월 동안 벨가스트 해군은 그 기동력으로 상대의 배를 분단시킨 후 여러 척의 배가 갈고리를 걸고 습격하여 배를 나포하는 것을 주된 전법으로 삼아왔다.

그들은 내일도 그러한 전법으로 임할 것이 틀림없고, 또 벨가스트의 만에서 대형선인 아군 함대는 신중히 기동하지 아니하면 좌초되기 십상이다.

이에 엄히 영을 내려, 결코 해안에 접근하지 말고, 해안과 1해리 이상의 거리를 늘 유지하라 하였다. 하물며 협만의 입구에 사슬을 묶는 수를 즐겨 쓰는 다닐이 상대이니 결코 얕은 바다로 올라갈 이유가 없음이다. 한편 총포수들에게 엄명을 내려, 갈고리가 걸리기 전에는 총을 쏘지 말라 명하였다.

듀리온 왕국 해군의 총사령관 바르바리고는 기함 빅토리 호를 기점으로, 원거리에서 벨가스트 함대를 포격합니다. 비록 거리가 멀어 그 명중률은 형편없이 떨어졌지만 위력은 굉장한 것으로, 운 나쁘게 직격당한 용선은 그 자리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벨가스트 해군은 전속으로 전진합니다. 듀리온 해군은 포격을 위해 반회전하여 측면을 보이고 있었고, 또 기동성이 벨가스트 함대보다 뒤떨어졌기에 빠르게 접근을 허용하게 됩니다. 이에 듀리온이 자랑하는 두 도리안 갤리어스, 빅토리와 트리니다드는 벨가스트 용선의 습격을 정면으로 받게 됩니다.

도리안 갤리어스는 선폭이 넓고, 또 두텁고 높은 선벽을 자랑하는 함대로서, 용선과의 높이 차이도 상당했습니다. 이에 벨가스트 해군의 백병전 시도는 근원적으로 어려웠고, 또 그 높은 선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은 총포의 저격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편 듀리온 해군은 해상 요새, 도리안 갤리어스를 축으로 벨가스트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좌 우 양익에서 함대를 진군시켜, 벨가스트 함대를 반포위하는 진형을 구축합니다.

이에 벨가스트 해군은 재빠르게 선회하여 왕국의 좌익을 돌파합니다. 도리안 갤리어스를 쉽사리 나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입니다. 반포위된 상태로 화력이 우수한 듀리온 해군의 포격을 받으면 견딜 수 없다는 그 판단은 정확했고, 또한 대형선 위주로, 벨가스트 해군보다 수가 적은 듀리온 해군이기에 그 포위망은 소형선인 벨가스트의 용선이 돌파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벨가스트 해군은 좌익을 집중 공격하였는데, 배와 배가 뒤섞이게 되면 포격전이 어렵게 됩니다. 실제로 중앙의 도리안 갤리어스, 그리고 우익의 듀리온 해군은 아군을 맞출 위험성 때문에 쉽사리 그 자랑스런 포격을 가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바르바리고는 이에 수기로 신호를 보내, 전열을 유지한 채 우익을 진군시키고, 원거리에서 총을 쏘아 용선을 제압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움직이는 요새, 도리안 갤리어스로 상대의 용선에 돌진합니다. 두터운 선체와 압도적인 중량으로 상대의 배를 그대로 침몰시키는 위용에, 천하의 벨가스트 해군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전황은 혼전 양상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 적군의 최대의 전함인 두 척의 갤리어스중 하나, 스패로우가 전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 주위에는 브리간틴 두 척과 용선 다섯 척이 었었다. 혼전 중이라 그들을 추격할 여력이 없었으며, 또한 당시의 나는 그들이 전황의 불리함에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벨가스트 해군의 상징인 바르바로사와, 그들의 주 전력인 용선을 격파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고, 브란과 다닐을 처단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그 다닐 마나그인 이상, 자칫하면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워낙에 기묘한 작전을 잘 쓰는 자가 아니던가.

전투가 끝나고, 브란 아곤슨은 바르바로사가 아닌, 스패로우에 타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그 때의 실책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설령 무모하게 스패로우를 추격했다가는 되려 이 쪽이 괴멸당할 수도 있었다. 다닐 마나그는, 그 스스로의 생명과 벨가스트의 패망을 미끼로, 가장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왕을 안전하게 도주시켰던 것이다.

벨가스트의 기함 바르바로사는 건재했지만, 또 한 척의 갤리어스인 스패로우는 브리간틴 두 척과 용선 다섯 척을 이끌고 전장을 이탈합니다. 집요한 백병전과, 배와 배가 뒤섞인 혼전의 양상이라 바르바리고는 전황의 불리함을 깨닫고 도주하는 배로 판단, 추격하지 않습니다. 혼전 중 무리하게 스패로우를 추격했다가는 전열이 붕괴될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브란 아곤슨은 스패로우에 타고 있었던 것이 뒤늦게 밝혀지며, 기함 바르바로사에서 줄곧 지휘를 맡았던 것은 다닐 마나그인 것입니다.

스패로우의 움직임에 대응을 포기한 대신, 바르바리고는 더욱 집요하게 벨가스트 해군을 압박했습니다. 벨가스트 해군이 자랑하던 갈고리를 통한 근접전은, 벨가스트의 용선보다 훨씬 크고 높았던 듀리온의 군함에는 쉽게 통용되지 않았고, 힘겹게 적선에 기어오른 벨가스트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집중 사격에 전사합니다. 그렇게 5시간 동안 계속된 해전의 끝에, 마침내 빅토리와 트리니다드는, 벨가스트 기함 바르바로사를 사거리에 포착합니다. 빅토리의 선원이자 포격수 로날은 훗날, 그에 대한 수기를 남기게 됩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 싸웠어. 다닐 마나그.

이젠 박물관에 보내야 마땅한 저 고물 용선 백여 척을 가지고 수십년간 바다의 왕자 자리를 지켰지. 무적이라 불린 안드레이 도리아를 물리치고, 라겐하임도 함락시켰어. 육지에선 총포가 전사들의 자리를 내몬 지 오래였지만, 그 시대에도 바다에선 당신과 같은 용사들이 싸울 수 있었어.

한 사람의 뱃사람으로서, 나는 선장이나 저 위대한 우리의 제독 바르바리고보다 당신을 훨씬 존경했어. 도리안 갤리어스 한 척, 아니 하다못해 그냥 갤리어스가 열 척만 당신에게 주어졌어도 승자는 당신이었겠지. 간만의 차를 절묘하게 이용하고, 연안의 바다를 자신의 무기로 삼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격을 퍼부어 왔잖아. 그렇게 수십년간 줄곧 이겨온 게 당신이잖아.

그렇지만, 이젠 아냐. 당신이 격파한 안드레이 도리아가 남긴, 이 거대한 군선은 이제 더 두터운 장갑과 대포로 무장해서 40년 전의 복수를 하려 해. 벨가스트의 미노타우루스. 당신은 그 주름이 가득한 얼굴과,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에도 누구보다 강한 전사야. 지금도 당신과, 당신의 여왕과, 당신의 형이 사용하였던 그 소중한 배에 감히 발을 들인 우리 수병들 중 그 누구도 당신의 도끼에 맞서지 못하잖아.

그래서, 우린 당신과 검을 맞대지 않기로 했어. 바르바로사엔 당신의 왕이 없으니까. 이제 우리가 그 배를 나포해야 할 이유조차 없어. 명령에 의해 이제 우리는 당신을 향해 선회하고 있어.

스물 다섯. 아니, 이제 스물 여섯의 수병이 당신에게 막 목숨을 잃어버렸지.

그리고 나는, 이제 이 커다란 쇠통으로 당신의 배를 겨누고, 함장의 손짓에 따라 심지에 불을 붙일 거야. 이 거리에서 난, 표적을 놓친 적이 없어.

서른 하나. 서른 둘.

어쩌면, 당신과 같이 위대한 바다 사나이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라. 점점 더 커다란 배에, 더 커다란 대포를 싣고, 서로가 먼 바다로 나가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대포만 쏘게 될지도 몰라. 그 편이 효과적이니까. 그 편이 안전하니까. 그래서 여느 겨울의 계집아이들처럼 뒤로 엉덩이를 빼고 팔로만 눈뭉치를 집어던지며 깔깔대는, 그런 우스운 꼴이 당신이 지배하던 바다를 채색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 이제 막 당신은 마흔 둘의 수병을 쓰러트렸고, 우리 동료들은 당신의 배에서 모조리 쫓겨 갔지. 아아, 방금 선장님이 손을 휘두르셨어.

안녕히. 마지막 바다의 전사여. 편히 잠들기를.

벨가스트 해군은, 도주한 스패로우 이하 8척을 제외한 전원이 대파, 전멸했습니다. “항복을 허용치 않는다.” 는 칼라인 3세 전하의 엄명도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단 한 척의 함선도 항복해 오지 않았습니다.

브란 아곤슨의 행방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벨가스트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약탈되었으며 그 주민은 분산 수용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벨가스트에 대한 철저한 탄압은 칼라인 3세 전하의 중차대한 실책으로 생각됩니다. 이후, 듀리온 왕국은 이 가혹한 탄압과 살육을 명분으로,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벨가스트 해전은 그 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포수 로날이 수기에 쓴 것처럼, 더 이상 작고 빠른 함대가 전술의 묘를 보이거나, 용감한 바다 사나이들이 칼과 도끼를 맞대는 일은 점차 사라져갔으니까요. 당시에는 “해상 요새” 와 같이 불리며 그 거대함을 과시한 도리안 갤리어스를 능가하는 대형 함선이 점점 나타나고, 함선은 점점 대형화되며, 해전은 점차 그 중심을 포격전으로 옮기게 됩니다.

벨가스트 해전은 포격전을 위주로 한 근대 함대와, 백병전을 위주로 한 고대 함대의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대 함대는 뼈아픈 패배를 맞이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갑니다.

벨가스트 해군의 전멸과 함께, 세계의 해상전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 필자의 흑의 재상 참조
4) 벨가스트 해군의 기함이었던 바르바로사를 포함한 갤리어스 2척은 구 제국에서 나포한 배이고, 브리간틴 17척은 듀리온 왕국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당시의 벨가스트인은 항해술과 해전 수행 능력은 정평이 나 있었지만, 조선술에 있어서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댓글

오승한, %2007/%11/%05 %18:%Nov:

마지막 구시대의 유물들이 사라지는 순간이군요. 벨가스트의 난에 대해서는 저도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는데, 이것저것 글들에 맞춰서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근데, 왜 이리 글 작성 속도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지(…) )

 
_엔, %2007/%11/%05 %19:%Nov:

흑흑. 승한님 말씀대로 여기서도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는군요. 해전의 내용 자체에 그런 흐름이 반영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불쌍한 브란과 다닐. 다닐의 장례식은 로키님이 쓰신다고 하셨던 것 같고 누가 다닐의 입장에서 이 전투 그려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브란이 어디 갔는지도 궁금하고… 그건 약간 신화적인 얘기가 되겠죠? 무엇보다 하루 사이에 벨가스트 난의 커다란 윤곽이 다 잡혀버렸군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로키, %2007/%11/%06 %02:%Nov:

오오 역시 군사 전문가 복스양의 훌륭한 식견이! (..) 뱀프님은 마음에 안 들어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멋진 걸요. 정교한 전술적 분석과 한 시대가 끝나가는 아쉬움, 실제 역사가 그렇듯 놓쳐버린 기회의 연속에 정말 읽는 재미가 있네요. 다닐의 장례식은 사실 저렇게 바다에 가라앉은 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마그누스를 주역으로 한 글은 마나의 탄생 쪽으로 돌리기로 마음 먹었고.. (아스파와 다닐도 나름 주역이지만) 역사의 큰 흐름과 인물들의 감정선이 살아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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