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뤠이신 - 황금손

황금 손의 사나이
손을 펴면 그 속에서
밀이 나오고, 말이 나오고
칼이 나오고, 금이 나오고…
-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그게 정말인가?”

돈울프의 목소리는 낮고 준엄했다. 전령은 움찔하며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틀림없다고 합니다, 돈울프공.”

칼라인의 오른팔로 알려진 남자는 애써 진정하는듯 잠시 침묵하더니 손을 저었다.

“가보도록 하게. 입단속은 철저히 하고.”

“예.”

전령이 도망치듯 물러간 후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누군가 책상을 내리치는 탕! 소리가 울렸다.

“이런 젠장할…”

“흥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오, 마그누스.”

그러나 돈울프의 목소리는 피곤했고, 미간에는 걱정스러운 주름이 잡혔다.

“아, 그래! 점잔만 빼고 앉아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겠지! 이제 대체 어떻게 할 거요? 선적이 다 가라앉아 버렸으면 가루크한테 사오기로 한 군마는 어떻게 되는데! 아니, 당장 군량미는!”

“조용히좀 해주겠소?”

걱정도 없는 태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시끄러우면 생각을 할 수가 없지 않소.”

마그누스는 기다렸다는 듯 구석에 앉은 상인에게 몸을 돌렸다.

“영감은 뭐가 그렇게 천하태평이야? 돈 문제는 당신 담당이잖아!”

“그러니까 생각을 하는 중 아니오.”

의자에 깊이 기대앉은 진 뤠이신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마그누스가 식식거리고 돈울프가 생각에 잠겨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동안 이국의 상인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우선 선적권을 되도록 높은 값에 팔아야겠소.”

“무슨… 이미 가라앉은 배의 선적에 대한 권리를 누가 사겠소?”

돈울프는 놀라서 진 뤠이신을 쳐다보았다.

“입단속을 시키라고 지시하신 건 공이 아니었습니까?”

상인은 이제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배가 늦어지는 동안 당장 돈이 급해서 원래 값보다 싸게 선적을 파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니겠소. 그렇지 않습니까?”

진 뤠이신과 돈울프는 잠시 서로 마주보았다. 부정직하고 어쩌면 위험한 거래의 맞은편에 걸린 것은 당장 군량이 없어 굶는 병사들, 아니면 약탈로 자체조달을 하느라 그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민심을 잃는 결과. 돈울프는 시선을 내렸다.

”…알았소이다.”

“또 하나…”

상인은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밀을 좀 사들여야겠소이다.”

“밀?”

마그누스는 진 뤠이신을 돌아보았다.

“밀이 나오려면 아직 두어 달은 있어야 하잖아?”

“수확하기 전의 밀에 대한 권리를 사들여야겠소. 되도록 다량으로… 값은… 그래, 부셸마다 1 디나르 정도면 적당할까.”

돈울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진 대인, 내가 상인이 아니라는 건 인정하오만… 올해처럼 밀이 풍년인데 누가 벌써 수확도 하지 않은 밀을 사들입니까? 게다가 1 디나르라니, 올해 값은 그 반도 안 될 걸로 아는데?”

“과연 돈울프공! 상인이 아닌 분이 자세히도 아십니다.”

진 뤠이신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돈울프의 얼굴은 심각했다.

“웃을 일이 아니오, 진 대인. 어째서 그런 무리한 거래를 하려는 것이오? 들어올 배가 가라앉은 지금 석 달 후 군마를 사들이기도…”

“군마를 사야 하니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심하십시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지지요.”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국의 상인은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즐거운 표정으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날씨가 좋습니다. 테겔 꽃이 향기롭지요?”

진 뤠이신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나간 후, 그가 나간 문을 한참 쳐다보던 마그누스는 돈울프에게 말했다.

“저 아저씨,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것 아닐까?”

돈울프가 할말을 잃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드문 때였다.



”…도대체.”

수확이 끝난 밀을 가득 실은 수레 행렬을 언덕 위에서 지켜보는 진 뤠이신은 변함없이 즐거워보였다. 돈울프가 입을 떼자 그는 동료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체 날씨가 변해서 밀이 귀해질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 대인?”

돈울프는 한편 분하다는 표정이면서도 안도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재정 담당인 뤠이신이 얼마 안 남은 은을 대부분 밀 거래에 써버린 후, 지난 두 달 동안 걱정이 없었던 것은 뤠이신 본인뿐이었다. 상인은 빙긋 웃더니 이제 얼마 안 남은 작은 보랏빛 꽃을 발끝으로 건드렸다.

“테겔 꽃이 일찍 피었더군요. 우리 고향에서는 메이리엔이라고 부르는 꽃이지요.”

돈울프는 기다렸지만, 진 뤠이신은 그 이상 아무 설명이 없었다.

“왜 제게도 아무 말이 없었던 겁니까?”

“제가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대답에 돈울프는 한숨을 쉬었다. 두 사내는 잠시 편안한 침묵을 지키며 수레 행렬을 지켜보았다. 밀이 갑자기 귀해지면서 미리 사들였던 수확권과의 거래 차액으로도 군마를 사들이고도 남고, 군대를 먹일 수도 있고, 식량이 부족한 지역과 거래할 수도 있을 그 황금빛 풍요를.

”…어떤 상인이든 영업상 비밀은 있게 마련이지요.”

마침내 진 뤠이신은 마치 사과하듯 말했다.

“당신의 판단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회복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도 당신을 완전히 믿기는 어렵군요.”

“그것은 칼라인 폐하께서 유능한 신하를 두었다는 뜻이겠지요.”

다시 두 남자는 나란히 수확이 끝난 들판을 함께 내다보았다. 맑은 오후는 천천히 저녁을 향해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