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철

이윽고 벽력 같은 소리와 함께 백 보나 떨어진 곳의 표적이 반 쯤 날아가, 그 흔적조차 안 남게 되어버렸다. 이윽고 그 사내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만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공작 전하의 목소리도 평소와 달리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마법인가?”

“아니요, 과학입니다.”

“불과 연기를 뿜는 검은 쇠막대”가 에레모스 반도에 처음 등장한 이래, 찬탄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여러 영주들은 그 파괴력에 주목했지만 실제로 총기가 의미가 있게 운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총기를 다량으로 구비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세력이 드물어서 병력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로서는 적의 주요 인물을 저격하는 용도였는데, 그 용도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선 당시의 총기는 그 명중률이 떨어져서 제 아무리 숙련된 사수라도 상대를 맞힐 수가 없었고, 또 그 사정거리도 활과 비교하면 짧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총기는 실효성이 없음이 인정되어 예전용 축포나, 신호용으로 이용되는 정도였습니다.

자비에르와 천의 성기사는 에레모스 반도 내에서 최초로 총기를 다량으로 소유한 군사 집단이었습니다. 1) 총기의 진정한 가치에 눈 뜬 셈입니다. 당시의 영주들은 이러한 총기를 다량으로 구비하면 반드시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점을 확신하면서도, “고가의 장비” 인 까닭에 선뜻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점은 듀리온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이피리스를 중심으로, 주위의 영지를 병합하고 체제를 가다듬는 과정에서, 건국왕 전하는 처음으로 총기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칼라인 공 2) 이 말씀하셨다.

“듣자니 총이라는 무기가 있어서, 백 보나 떨어진 곳의 표적을 맞추어 없앤다 하는데 활보다도 몇 배는 위력적이라 합니다. 이 무기를 군중에 도입하는게 어떻습니까?”

조언자 마그누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총이라는 것, 한 자루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던데. 제대로 사들이려면 세금을 두 배는 올려야 할걸세.”

그러자 칼라인 공이 고개를 저으셨다.

“세금을 올릴 수는 없네. 그것은 안될 일이야. 다른 방법이 없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자비에르와 그 수하들의 합류는 실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점은 상존합니다. 자비에르와 초기의 우노스 정교회는 그 세력 면에서 여러 대영주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것이 총병대인데, 넓은 영지를 갖춘 여러 대영주들도 경제적인 이유로 육성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그 의문의 답을, 필자는 듀리온 왕국에 합류한 진 뤠이신의 수기에서 찾아내었습니다.

이에 장부를 살피니 왕의 아래에 영주가, 영주의 아래에 소영주가, 그 아래에 다시 기사가 있더라. 다시 이 기사는 종자와 그를 따르는 병사를 가지니 그를 부양할 경제력이 필요함이라. 이에 땅을 착착 쪼개어 나누어 관리하니 물자가 결집되지 못하여 자본이 생기지 아니함이라. 이러함이니 기사 한 명이 차지하는 영지를 줄여 발생하는 단기적 수익 만으로도 총포 다섯 정을 족히 구입함이라.

즉, 기존의 봉건 제도의 기틀 아래에선 필연적으로 소영주와 기사들의 존재가 따르고, 이들이 다시 군제의 핵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총기를 구비할 자금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한편 총기의 도입은 기사들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땅히 기사와 여러 영주들의 영지를 축소하고 군제를 개편하며, 그렇게 하여 획득한 자금력은 총병을 육성하는데 쓰는 것이 부국 강병을 위한 지름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각 영지의 실권자들 그 스스로가 영지를 가진 봉건 귀족이었다는 점이 개혁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개혁을 미뤄온 또 다른 이유는, 총기의 위력이 실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총기는 날씨에 따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고, 재장전에 오랜 시간이 얼리며, 그 사정거리도 활보다 짧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영지 지배의 근간을 뒤흔들면서 개혁을 해야 할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의 성기사가 보유한 총기의 위력은 이후의 전장에서 서서히 드러나기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브레넌 장군의 수기를 다시 인용합니다.

점호를 마치고 아군의 피해를 헤아려 보니, 대승이었음에도, 적의 궁수대의 조직적인 반격에 아군 총병대가 다수 사망하여, 이 할에 달하는 병력이 다음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주교가 말하길. “총기가 무사하니, 내일이라도 당장 다른 형제들이 맞서 싸울 것입니다.” 라 답하였다.

수기에서 드러나듯, 총기는 다른 무기에 비해 극히 다루기 쉬운 무기입니다. 대부분이 교육을 받지 못한 지역 출신이던 천의 성기사 3) 들이 총기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활이나 창의 경우, 교육의 여부와 달리 익숙해질 수는 있지만, 부대의 일원이 되어 일제히 공격하고 사격하는 것에는 훈련과 조직적인 전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제의 시민이 오늘의 병사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점은, “충분한 병기가 제공된다면” 순식간에 병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을 갖습니다. 이에 착안한 돈울프 공과 진 뤠이신은, 천의 성기사가 세운 전공을 내세워 총기의 효율성을 주장하며, 군제 개혁을 착실하게 진행해갑니다. 그 과정에서 오간 서신의 일부를 개재합니다.

돈울프 선생께. 뤠이신이 고합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왕국 내의 여러 지역을 순찰하여 그 상세한 지형과 물산을 조사하였습니다. 웨스트랜드 땅은 비옥하고 기온이 알맞아 포도의 원산지라 하니, 금번에 울타리를 허물어 크게 포도밭을 가꾸고, 다시 그 포도로 술을 빚어 대륙에 판매하면 그 수익이 클 것입니다. (중략) 이로서 충성스러운 전하의 총병대를 새로이 다섯 부대를 만들고, 그에 더해 경기병을 꾸릴 수 있음입니다.

이상의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돈울프 공과 진 뤠이신, 자비에르 대주교 사이에서 간단한 서신 만으로도 서로간의 의사가 통한 것은 유테리아의 정권 교체 과정에서 잘 알려진 일4)입니다. 기존 귀족들에게 지급된 영지를 줄이고 그 잉여 토지를 국유지화하여 부를 창출하며, 그 부로 총기를 구입하고 병사를 먹이고 입히는 과정에서 양성된 병력은 귀족들의 사병이 아닌, 건국왕 전하를 따르는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군제 개혁의 결과로 구 제국파로 칭해지는 귀족 세력은 영지와 휘하 병력이 크게 줄어들었고, 추후 반도 통일 이후 벌어진 정권 다툼에서 아데프치오 세력에 패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총기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이름 높은 기사 루오르 아마란타와 그 직속 기마대를, 건국왕 전하의 친위대가 이단 사격으로 격파한 이라하 전투였습니다.5)그 외에도 많은 전투에서 총기는 그 위용을 뽐내며, 검과 창을 대신한 전장의 주인공으로 자리합니다. 그러나 비단 총기가 바꾼 것은 한 전장의 승패만은 아닙니다. 총기의 도입으로 왕국의 군제가 개편되었고, 뒤이어서 신분 체계가 뒤바뀌게 되었으니까요. “선택박은 고귀한 자” 들만이 쥐고 휘두를 수 있었던 검 대신, “여자나 어린아이들조차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기의 도입은 실로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또한, 병력을 집중할수록 그 위력이 극대화되는 총기의 특성, 그리고 훈련에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은 점의 두 가지는 이후의 전쟁사에서 많은 민중이 병력으로 총동원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전쟁은 더욱 치명적이고, 단기 결전적인 성향이 된 것입니다.

총기 이전의 전쟁은 “지배자와 그를 따르는 기사들간의 투쟁” 의 결과물이었고, 민중들은 그에 관여할 수 없었고, 그 결과조차 지배자가 바뀌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검은 철” 이 에레모스에 들어와, 마침내 전쟁의 필수품이 된 이후의 전쟁은 “집단과 집단 사이의 총력전” 이 되었고, 그에 대한 민중들의 참여의 비중도, 결과도 치명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총기의 도입을, 어린 소년이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상황을, 비극으로 바라보시는 시각도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민중 스스로가 자신의 정권과 신념을 위해, 민중 스스로의 손으로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총기의 도입은 하나의 축복과도 같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검은 철” 은,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민중의 시대로 넘어오게 된 열쇠였던 것입니다.

1) 세 가지 보배의 견해를 따름
2) 당시의 건국왕 전하는 제이피리스의 지배자이고, 듀리온 왕국을 건국하기 이전이었습니다.
3) 천(千)의 성기사의 견해 인용
4) 세 개의 기둥 의 견해를 따름
5) 이라하 전투의 견해를 따름

댓글

로키, %2007/%10/%29 %09:%Oct:

멋진데요. 총기의 진정한 위력은 (적어도 초기에는) 활에 대한 위력의 비교우위라기보다는 다루기 쉽다는 점이었다는 점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고, 또 그 점 때문에 민중이 전쟁의 주체가 되었다는 분석도 흥미롭네요. 어떻게 보면 무기 이상으로 사람이 소모품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긴 하지만요. 총기가 대세가 되면서 입심 좋은 궁수 아넬리아드의 위치는 어떻게 되었을까도 궁금해지네요.

 
정석한, %2007/%10/%29 %18:%Oct:

아넬리아드같이 숙련된 궁수라면 총기의 시대에도 충분히 제 몫을 했을 듯 하네요. 말씀하신대로 초기의 총기는 결코 그 성능이 활보다 낫다고는 보기 어려운 무기니까요. 주요 적장등을 노리는 스나이퍼로 계속 활약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예상이라기보다는 소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복고 취향이라, 새로운 것들이 옛 것을 밀어내는 현상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아프거든요.)

마침 광열님께서 전부터 "전투은 전사들의 것" 이라는 관점으로, 총기가 끼친 영향을 다루고 싶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아넬리아드나 기타 개인의 역량이 뛰어난 전사들이 총기의 시대에 그 역량을 어떻게 발휘했고, 또 어떻게 역사의 뒤쪽으로 묻혔는지를 써주시지 않을까… 희망만 해봅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

 
_엔, %2007/%10/%30 %16:%Oct:

'T'적인 글을 또 하나 쓰셨군요. 조금 더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이 들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로키님이 써주셨군요 : ) 저도 복고 취향이라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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