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락스 외전

[담배라도 배워 두었더라면….]

자락스 토레이는 어느새 뉘엿 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슴없이 동료라 부를수 있었던 존재를 대비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정의가… 나에게는 나의 정의가 있는것이지. 당신이 당신의 정의에 충실한다면,

나 역시 나의 정의를 충실하게 관철시켜 보이겠어.'

해질녘과 새벽녘은 유일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시계따위의 기구가 없이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분초단위로, 시시각각 커지고 선명해지는 옆쪽의 숲에서 들려오는 각종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요리를 하기 위한 연기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의 참상도 잊은채 정신없이 바깥에서 뛰어놀고 있는 말썽쟁이 꼬마들을 잡으러 다니는 어머니들의 외침소리… 난민 캠프의 해질녘은 오늘 어떤일이 일어났는지를 잊을만큼 평화로운 모습으로 온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신대로 숲쪽과 캐스하운드가 몰려왔던쪽에 경비를 세워뒀습니다.]

그 평화로운 해질녘을 가늘게 뜬 눈으로 정신없이 바라보던 자락스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고했다 아를란. 너도 이쪽에 앉아 노을이라도 구경하는게 어때?… 정말이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

는지 따위는 까맣게 잊을만큼 평화로운 풍경이 아니냐?….]

[꽤나 팔자가 좋으시군요… 솔직히 지금 배운다고 배우고는 있지만… 진짜로 수련을 한다고 해서

내가 스승님처럼 될수 있을지… 난 잘 모르겠습니다…]

제다이 로브에 파다완을 상징하는 옆 머리를 한 앳된 청년 -아를란- 은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자락스 의 옆쪽에 쿵 하고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다.

'나라고 아무 흔들림이 없을리가 없지… 하지만 녀석의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 녀석도 덩달아 흔들릴테지…'

자락스는 다시 쓴웃음을 지으며 입으론 퉁명스럽게 대답해 놓고도 감탄한 표정으로 노을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그 제자의 손에 멈추었다.

[그 바구니는 무엇이냐 아를란?]

[아… 이거…….말입니까?…….]

아를란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꾸러미속에서 나온것은 다름 아닌 방금 요리한듯한 빵과 고기, 그리고 자그마한 보온병에 정성스레 담긴 따스한 스튜였다.

[이거… 음식 아니냐?…]

자락스는 챙피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음식 바구니를 풀어놓고 머리만 긁적이고 있는 아를란을 잠시 쳐다보다가는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 웃지 마요…. 그….. 하도… 고맙다고 가져가라고 성화를 해서….. 캐스 하운드 건이며…

아이들과 놀아준 건이며… 뭐 어떻게 해서든 감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벌개진 얼굴로 더듬더듬 대답하는 아를란을 보며 자락스는 뻥 뚫려있는거 같던 마음이 다시 '무언가'로 차오르기 시작하는것을 느꼈다. 스무살이 갓된 한참 외모에 신경쓸 나이의 청년에게 손에 음식바구니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꽤나 챙피한 노릇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히 어려운 식량 사정에서도 무언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내민 그 따스한 온정을 심성이 원래 착한 저 녀석은 차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음식바구니를 받아들고 자신을 찾아 왔으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묘한 인연이로군……'

자락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요리되어 정갈하게 담겨있는 그 음식 바구니를 쳐다봤다. 그 음식 바구니는 '그날' 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면서, 또한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원체 궁벽한 시골이라 별로 드릴것이 없습니다. 제다이 선생님.]

마을의 촌장이 땅에라도 닿을듯 고개를 숙이며 쭈글쭈글한 손으로 사람좋은 미소를 띄고 건네는 그 바구니를 자락스 토레이는 마치 다른세상에서 온 물건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게…. 뭡니까?….]

[워낙에 서두르셔야 한다기에… 다른건 별로 드릴게 없어서 그냥 가시는길에 허기라도 면하시라고….

도시락이나 좀 장만해봤습니다.]

자락스는 혹시라도 별것이 아니라며 거절할까봐 두렵다는듯,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낯선 생물이라도 되는듯 눈알을 굴려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별 생각 없이 한 일이었다. 길다면 긴 다스 세데스와의 도피생활을 주욱 돌아봐도 손에 꼽을만큼 독하게 추격해오는 이번 제다이 추격대의 눈을 피하기 위해 흘러들어온 변방행성 바쿠라에서도 구석에 속하는 이름도 없는 시골 마을…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다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환심을 사기위해 가끔 농작물을 망친다는 맹수 들을 무찔러주고.. 신기해하는 동네 꼬마들에게 포스를 이용해 몇가지 재주를 보여주며 함께 데리고 놀아준것이 전부였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속이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여기 순진하게 모여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진심으로' 고마워 하는 듯한 이 표정과 태도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자락스는 스멀 스멀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무언지 모를 미지의 감정' 에 살짝 떨리는 손으로 노인 에게서 바구니를 받아 뚜껑을 열었다. 치즈…. 과일…. 갓 구운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말린 고기… 너무나 보잘것 없이 평범한….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말로 고마워 하며 만든듯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 초라한 도시락을 보며 자락스는 마을 사람들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제다이라는 것들을 처음본 시골 무지렁뱅이 놈들이 일찍 출발한다면 가만 있을리가 없지.

필시 구경하려고 비렁뱅이들처럼 모여들것이다. 그럼 그때 모조리 죽여버리면 되는거지…

간단한게 아니냐?… 맹수를 몰아내면서 확인한 바로는 이곳엔 제대로 된 블라스터 몇자루가

무기의 다니까 말이다…]

자락스는 미소를 띄우며 마을의 촌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바구니를 닫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안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시선을 내리깔며 피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이별에 섭섭해 하는 표정이라고 생각해 줄지도 모르겠지…

[왜 그렇게 해야하냐고?…. 그거야 그렇게 죽여버린 마을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공포와 혼란

이 다크포스의 물결이 되어 제다이놈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줄것이기 때문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 시간에 우리는 도망갈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지… 이번에 우리의

꼬리에 달라붙은 놈들은 정말이지 끈질기기가 쇠심줄 같구나…. 하지만 오늘로 그 추격도

끝을 보는 것이지. 그동안 우리가 따돌리거나 처리한 다른 제다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마을의 꼬맹이들이 하나둘씩 달려와 자락스의 팔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또 올꺼죠? 제다이 형?…] [나도 정말 형이 가르쳐준대로 매일밤마다 하면 제다이가 될수 있는거죠?…] 팔을 잡아당기며 떼를 쓰는 녀석… 그리고 어느새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는 녀석… 자락스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꼬마들의 머리에 한명씩.. 한명씩 손을 올리며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아침에 놈들이 충분히 모였다 싶으면 내 방으로 나를 부르러 오거라. 그리고는 함께 나가서

놈들을 쓸어버리고 이번 추격대와의 추격전에 종지부를 찍는것이지…]

'그렇게…. 놔둘수는……' 자락스는 손에 들고 있는 그 음식바구니를 보며 스멀스멀하고 피어오르는 정체모를 '감정'과 그와 함께 떠오르는 생각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스 세데스는 지금까지 자락스 자신이 옆에서 지켜본, 수십번… 수백번의 라이트세이버 듀얼 에서 단 한번도 패한것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전투능력을 가진 사내였다. 그 사내가 지금 저 안에서 앞으로 자기 자신이 일으킬 학살을 기대하며 명상으로 한참 몸과 마음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있을텐데… 이까짓 도시락 바구니 하나를 받아 들고서 혼자 흥분해서는 '그 다스 세데스'의 앞을 가로막겠다고?…

[주신 도시락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자락스는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주욱 훑어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서 그만 두면 된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고 말한뒤에 방으로 돌아가 다스 세데스를 부르기만 하면 모든일은 끝난다. 전쟁중에 죽여버린 제다이들과 여기 이 무지렁뱅이같은 촌것들이 다를게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 말하면 된다.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자…

[잠시 스승님과 할말이 있으니까요…. 다들 일단 댁으로 돌아가 계시지 않겠습니까?…. 출발할때가

되면 여러분께 다시 말씀드릴테니까요…]

'멍청이!….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자락스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침착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러 버린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웅성웅성 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만약, 나에게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면…. 그래… 네놈따위가 나에게 덤벼드는장면은 상상만

해도 우습기 그지 없다만…. 만에 하나, 나에게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면 말인데….

다른 허술해빠진 시스로드 놈들이 가끔 보이는 자비따윈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꺼다.

나는 상대를 살려놓고 손바닥위에 올려놓은뒤 계속 빈틈을 일부러 보여가면서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독사같은 어딘가의 멍청이와는 종자가 다르니까 말이다.]

자락스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받은 바구니를 자신의 방에 가지런히 내려놓은채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다스 세데스와의 듀얼을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던 몸은 실제로 그 전투를 코앞에 놔두고 있는 지금. 손톱만큼의 떨림도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병신같은 짓거리를 해왔지만… 이건 말할것도 없이 그중 으뜸이로군….'

자락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직까지 좋은 냄새가 풍겨나오고 있는 바구니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되는 전쟁터에서조차 늘 느끼던 허망함과 망설임은, 자살 하러 가는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속에 스멀스멀 보일듯 말듯하게 차오르던 '정체모를 뭉클한 무언가' 만이 충만할뿐.

'살아 남아서… 만약 살아 남아서 다시 한번 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볼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정체모를 감정의 정체를 알수 있겠지……. 자락스 토레이는 웃으며 후드를 벗고는 라이트 세이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 있는 방쪽으로 뚜벅. 뚜벅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저 스승님.]

자락스는 아를란의 부름에 잠시 머릿속에 떠오르던 짧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음?….왜 그러느냐?….]

[다시 파ㄷ… 센 테즈나를 만난다면…그때는 어떻게 하실 껍니까?….]

그의 목소리에선 분노가 절절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미숙하기 때문일테지…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것에 망설임없이 분노할수 있는 순수함…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을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들고 거의 자신이 배워온 모든것이라고 할수 있던것에 그 칼을 들이댄 자기 자신의 무모함…. 자락스는 문득 아를란과 그 앞에 놓인 음식 바구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연한거지… 그때 역시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애쓸것이다.]

자락스는 조금은 얼굴이 풀리며 미미한 미소를 짓는 제자를 역시 엷은 미소를 띄며 바라보았다. 그래. 오래전, 아무 생각없이 '배워온' 것을 그저 생각없이 따르던 청년을 일깨워 일생 처음으로 '선택' 을 할수 있도록 도왔던 그 '바구니'가 그랬듯이, 이 '바구니'를 건네준 사람들의 마음도 이 앞에 앉아 있는 무모하리만치 순수한, 그러나 선량하기 그지 없는 청년에게 길을 보여줄수 있으리라…

[파다완 아를란.]

[예?…]

[네가 봐야 할것은 오직 하나다. 네가 누굴 지켜야 하는지… 그들의 모습만을 눈으로

쫓아라. 그렇게 되면 길은 저절로 보이게 될 것이다.]

[……]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고, 그렇게 행동해 왔으니까 말이지…]

자락스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를란의 표정을 본체 만체하며 음식 바구니속에 손을 집어넣어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하나를 손으로 잘라 입에 넣었다.

'아직도 나 역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하지만, 적어도 그때 문을 열고 내 방을 나서 다스

세데스의 방으로 걸어갈때 내 가슴속에 꽉 들어차 있던 '무언가' 가 무엇인지 만큼은…

이제 알 것도 같다.'

느긋하게 앉아 말없이 음식바구니를 비우고 있는 두사람의 머리위로 어느덧 어둠이 천천히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댓글

로키, %2007/%08/%17 %23:%Aug:

(원래 있던 곳 댓글에서 옮긴 것)

와~ 잘 읽었습니다. 플레이중 나온 짧은 장면을 과거 회상과 자락스라는 인물의 감정과 동기에 멋지게 엮어넣으셨군요. 위키 페이지도 열심히 만들어주셨네요. 재굴림 기회 드립니다. 어째 이번 캠페인 참가자들은 다 필력이 출중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