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점령지

참조: 고요의 해안

비엘란트 제국이나 알프 연방, 나르고스론드 왕국에 비해 카타론 신성교국, 아니 정확히는 교국의 호소에 규합한 십자군은 안힐라스 개척에 비교적 늦게 뛰어들었다. 늦게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군소 왕국에서 용병단, 상단까지 가세한 혼성 부대로서 대륙의 주요 세력들과 겨루기 버거웠던 십자군은 강대국들의 눈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남서부 해안에 정착했다. 이후 그들은 기존 정착촌들을 몰아내며 해안에 거점을 만들고 그 거점을 도시로 확대했다.

그러나 이곳 십자군 점령지는 아직 인간 국가들이 노스탤지아와 안힐라스 원주민들을 압박하지 못한 유일한 남부 거점이기도 하다. 척박한 내륙의 입지가 십자군의 원활한 내륙진출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에미넴 숲에 근거한 노스탤지아 부대들은 이 숲에서 나와 유격전을 펼쳤다가 다시 숲속으로 사라지고는 한다. 북쪽에 건재한 미나스 이실을 근거지로 한 바다요정과 그들의 우아한 만큼이나 치명적인 고속함대는 안힐라스 서북의 바다를 장악하고 있으며, 해로를 통한 북향 확장을 봉쇄하고 있다.

때문에 안힐라스 십자군 총사령관인 '사생아' 엑토르 발데스는 십자군의 내륙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척박한 땅에 길을 내고 우물을 찾느라 값싼 임금 노동자들과 현지에서 조달한 노예가1) 참혹하기 그지없는 노동조건 속에 무수히 죽어갔지만, 발데스의 강인하다 못해 무자비한 추진력은 빛을 발해 마침내 풍부한 지하수원을 발견했고, 병과 굶주림으로 퀭한 노예, 아니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빛의 사제가 축성한 이 터는 십자군이 내륙으로 확장하고 노스탤지아를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내부 세력과 알프 연방을) 견제할 거점인 글로리움이 되었다.

이제 강력한 지휘관의 영도 하에 내륙으로 뻗어가는 십자군은 빛을 선포하고 황금을 긁어모을 생각에 들떠 있다. 비록 거칠고 불친절한 땅에 이종족 유격대는 그림자처럼 나타나 피해를 입힌 후 다시 그림자처럼 사라지지만 그 정도는 신앙의 시련, 혹은 큰 돈을 벌려면 감수해야 할 위험일 뿐이다. 빛의 아버지 혹은 황금의 신, 혹은 양쪽이 손잡고 결국 승리할 것을 이들 독실한 신자들은 믿어의심치 않는다.

주요 세력

작센 공국

십자국의 주축 세력 중 하나인 작센 공국의 안힐라스 근거지는 점령지의 동쪽, 특히 뉴 햄프셔 주변이다. 뉴 햄프셔 영주이자 안힐라스에서 작센 공국을 대표하는 인물은 작센 공작인 에델버트 슈바르츠의 둘째 아들인 알더 슈바르츠이다. 그는 안힐라스의 십자군 부사령관이기도 하지만, 사령관과의 관계는 언제나 좋지만은 않다. 그 이유 중에는 원칙주의자에 냉정한 총사령관 발데스와 기회주의적이며 호탕한 슈바르츠 사이의 성격 충돌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려면 작센 공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서대륙 본토의 작센 공국은 (수도 햄프셔) 카타론 신성교국의 영향력에 속해있는 준독립 국가이지만, 알프 연방에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인접한 위치 때문에 연방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구도는 안힐라스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서, 십자군 점령지 동쪽의 항구도시 뉴 햄프셔와 알프 연방령 서쪽의 요크셔가 마주보고 있는 두 점령지의 경계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다. 양쪽 당국이 적당히 눈감아주는 동안 경계지역을 통한 자유로운 무역은 뉴 햄프셔와 요크셔 모두에 상당한 부를 쌓아주었고, 알더 슈바르츠도 합법적 무역소득, 몰래 손댄 무역의 이익, 그리고 사교역을 눈감아주는 뇌물 등의 경로로 역시 고수익을 올리고 있으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십자군 총사령관 발데스는 슈바르츠의 축재가 그의 독립성을 부추기고 슈바르츠가 알프 연방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이는 자칫 십자군 점령지 동부에 대한 영향력 상실뿐 아니라 본국 간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에 더욱 큰 문제이다. 비록 발데스가 슈바르츠의 상사라고는 하나 실은 슈바르츠도 십자군 연합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독립적인 세력과 근거지가 있기에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도 자칫 안힐라스와 본토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이러한 상황은 발데스가 내륙 개척을 결단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플라테아 왕국

플라테아 왕국은 전통적으로 신성교국과 동맹을 유지해 왔으며, 특히 지금 왕인 프루덴시오 2세의 신앙에 힘입어 교국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맹이자 안힐라스에서 교국의 대리자로 부상했다. 안힐라스에서의 근거지는 아라벨라와 최근의 글로리움을 비롯한 내륙 거점들이며, 사령관은 십자군 총사령관이기도 한 엑토르 발데스이다. 프루덴시오 2세의 충복 트리스탄 발데스의 '다소 늦게 태어난' 유복자로서 왕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파다한 발데스는 용병대장으로 본토의 다양한 분쟁 중 실전경험을 쌓았으며, 그런 그가 이끄는 플라테아 군대는 상당수가 용병과 유배 죄수이다.

발데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십자군의 내륙 확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물론 서남부에서도 노스탤지아를 봉쇄하겠다는 의지와 안힐라스의 자원과 토지확보 경쟁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이다. 그러나 동부의 뉴 햄프셔와 슈바르츠, 나아가서는 알프 연방을 견제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고려사항이다. 원래 알프 연방과 가까웠던 작센 공국이 안힐라스에서 알프 연방과 손을 잡는다면 안힐라스에서 십자군 점령지,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입지에 있는 뉴 햄프셔를 연방에 빼앗길지도 모르고 이는 본토의 세력균형마저 변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발데스는 북쪽의 에미넴 숲뿐 아니라 동쪽의 뉴 햄프셔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내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자유 형제단

자유 형제단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 군소 집단의 느슨한 연합을 비공식적으로 칭하는 말이다. 범죄 조직에 가까운 군소 용병대, 해적질과 노예매매를 일삼는 상단, 대규모 밀수 조직, 신분을 숨기고 도망온 범죄자, 한 몫 잡으려고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 등등 자유 형제단의 온갖 잡다한 집단과 개인들은 신앙이나 국가 이익보다는 이윤 혹은 새로운 시작을 찾아 십자단에 들어왔다. 이들은 방어와 은닉에 적합한 서쪽의 프리포트에 집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곳은 밀수와 노예매매, 정보 거래와 무기 밀매 등 온갖 장사가 벌어지는 위험천만하고도 무질서한 도시로 자라났다. 정식 지도자는 없지만 이곳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큰 밀수 조직을 운영하는 '신사' 칼로 데 로씨라고 한다.

1) 서류상으로는 빛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무임으로 참회의 봉사를 하는 이종족 신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