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

붉게 타오르는 눈. 그을림하나 없는 몸. 물러서듯 두 사람을 비켜서는 불.

엘 푸에고 아덴트로.

아르미체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엘리아스가 연인을 안고, 자신을 지나쳐 숲으로 들어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멈춰선 그의 친척이 뭔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뭔가 대꾸하고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은데.

낡은 창고가 맹렬하게 타들어가기 시작했지만, 그는 멍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 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래,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불을 끄는 것을 돕다가.. 창고에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보았었다. 새파랗게 질려서 무작정 달렸었지. 불을 지른 망할 몽테뉴 놈들이 리전에서 영원히 구해지지 않기를 빌며, 울타리를 뛰어넘고 달리고 달렸었다. 고작 창고 하나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 엘리가 인심을 쓰듯 뻐기며 데려와준 이래로, 건물 구석구석에는 갖가지 추억이 물씬 배어있었다. 도저히 불에 타게 놔둘 수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창고에서는 믿기 힘든,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장면이….

얼마나 멍한 상태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헐떡이던 숨이 가라앉은 걸 보면, 좀 시간이 흐른 듯 싶었다. 문득 이단심문회에 알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미체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대부분의 이단심문관은 순수하다 못해 데우스와 그의 예언자들의 가르침에게 충실하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단자라 규정한 존재에게 냉혹하게 변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숲으로 추방당한 그리할바 가는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가족 전부가 살해당한다.

엘리는 마법사였다. 동시에 가족이었다. 가족의 허물은 덮어주고 지켜줘야 한다고 늘 배워왔다. 자신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건 데우스의 자비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다. 아르미체가 가볍게 성호를 긋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방금 그자는 마법사인가?” 아르미체는 굳은채,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까처럼 있는 힘껏 달린 것도 아닌데, 가슴이 또다시 쿵쾅쿵쾅거렸다.

남자, 요제프는 늘 그렇듯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